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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호변(元虎變)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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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문숙(文叔)
생년?(미상)
졸년?(미상)
시대조선중기
본관원주(原州)
활동분야문신
원계채(元繼蔡)

[상세내용]

원호변(元虎變)
생졸년 미상. 조선 중기 문신. 자는 문숙(文叔)이다. 본관은 원주(原州)이고, 거주지는 서울이다.

증조부는 원중거(元仲秬)이며, 조부는 원순조(元順祖)이고, 부친은 승지(承旨)를 지낸 원계채(元繼蔡)이다. 숙부는 이조판서(吏曹判書)를 지낸 원계검(元繼儉)이다.

1531년(중종 26) 식년시 생원 2등 3위로 입격하였고, 1538년(중종 33) 별시에 문과 급제하였다.

『중종실록』의 편찬에서 홍문관부교리지제교(弘文館副校理知製敎) 겸 경연시독관(兼經筵侍讀官)으로 참여하였다. 1546년(명종 1) 부친의 상사(喪事)에 품행을 바르게 하지 않고 근신하지도 않은 인물인데 육조낭관(六曹郞官)과 춘추관(春秋館)의 일을 겸하게 하여 역사를 편수하게 할 수 없다는 사간원의 탄핵을 받았다. 1547년(명종 2) 2월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 5월 홍문관수찬(弘文館修撰), 7월 홍문관교리(弘文館校理), 8월 병조정랑(兵曹正郞)에 제수되었다. 1549년(명종 4) 의정부사인(議政府舍人) 정유길(鄭惟吉)과 함께 승정원(承政院)에 나아가 봉서(封書)를 올리고 고변(告變)하였다. 양재역 벽서사건을 빌미로 정미사화(丁未士禍)를 일으켜 강원도 영월(寧越)에 유배된 이홍남(李洪男)이 석방될 가망이 없자 동생 이홍윤(李洪胤)이 반역한다고 조작하여 그의 처남인 원호변(元虎變)과 동서 정유길(鄭惟吉)에게 편지를 보내어 고변하게 한 것이다. 1551년(명종 6) 3월 황해도어사(黃海道御使)로 파견되어 흉년으로 굶주린 백성들을 구휼하였다. 같은 해 9월 청원부원군(淸原府院君) 한경록(韓景祿)을 상전처럼 모시며 아부한다며 그를 파직하라는 사헌부의 탄핵을 받았다. 이는 한경록이 조계상(曺繼商)의 외손(外孫)이고 이기의 질손(姪孫)인데, 공주(公主)에게 장가들어 왕의 총애가 당시 제일이었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1561년(명종 16) 8월 양주목사(楊洲牧使)로서 천신(薦新)에 사용되는 풍양천(豊壤川)의 은구어(銀口魚)을 잡는 것을 엄금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추고되었다. 1562년(명종 17) 여러 차례 탄핵을 받아 사류(士類)에서 용납되지 못하는 인물인데 형조참의(刑曹參議)에 제수되었으니 체직시켜야 한다는 사헌부의 탄핵을 받았다.

[참고문헌]

CD-ROM 司馬榜目
國朝文科榜目
明宗實錄

[집필자]

이동인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