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수양(邊壽楊)
[상세내용]
변수양(邊壽楊)
생졸년 미상. 조선 중기 관리. 자는 인수(仁叟)이다. 본관은 원주(原州)이다.
부친은 통훈대부(通訓大夫) 변처관(邊處寬)이다.
1483년(성종 14) 식년시에서 진사 3등 42위로 합격하였다.
영서도찰방(迎曙道察訪)‧장례원사의(掌隷院司議)‧중추부도사(中樞府都事)‧도총부도사(都摠府都事) 등을 역임하였다.
1509년(중종 4) 장례원사의로 재직 중이었는데, 사간원(司諫院)의 탄핵을 받아 도태(淘汰)되었다. 그러나 1510년(중종 5)에 재차 도총부도사에 임명되자, 사간원에서 도태시킨 관리를 재차 중용할 수 없다는 지적을 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후 대신(臺臣)들이 그에 대한 임명 취소를 지속적으로 건의하였고, 사헌부(司憲府)에서도 그의 인물됨이 청렴하지 않으므로 해당 관직에 걸맞지 않다는 지적을 하였다. 그러나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부친은 통훈대부(通訓大夫) 변처관(邊處寬)이다.
1483년(성종 14) 식년시에서 진사 3등 42위로 합격하였다.
영서도찰방(迎曙道察訪)‧장례원사의(掌隷院司議)‧중추부도사(中樞府都事)‧도총부도사(都摠府都事) 등을 역임하였다.
1509년(중종 4) 장례원사의로 재직 중이었는데, 사간원(司諫院)의 탄핵을 받아 도태(淘汰)되었다. 그러나 1510년(중종 5)에 재차 도총부도사에 임명되자, 사간원에서 도태시킨 관리를 재차 중용할 수 없다는 지적을 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후 대신(臺臣)들이 그에 대한 임명 취소를 지속적으로 건의하였고, 사헌부(司憲府)에서도 그의 인물됨이 청렴하지 않으므로 해당 관직에 걸맞지 않다는 지적을 하였다. 그러나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참고문헌]
中宗實錄
[집필자]
정병섭
수정일 | 수정내역 |
---|---|
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