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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린(朴亨鱗)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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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희운(希雲)
생년?(미상)
졸년?(미상)
시대조선중기
본관함양(咸陽)
활동분야문신
박눌(朴訥)

[상세내용]

박형린(朴亨鱗)
생졸년 미상. 조선 중기 문신. 자는 지구(之衢)‧희운(希雲)이다. 본관은 함양(咸陽)이다.

증조부는 박이경(朴而敬)이고, 조부는 박소종(朴紹宗)이다. 부친 선무랑(宣務郞) 북청교수(北靑敎授) 박눌(朴訥)과 모친 김계행(金係行)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동생은 이조좌랑(吏曹佐郞)을 역임한 박종진(朴從塵)이다. 부인은 김영손(金永孫)의 딸이다.

1507년(중종 2) 식년시에서 진사 3등 59위로 합격하였다.

1516년(중종 11) 식년시에서 병과 8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1521년(중종 16)에 예조낭관(禮曹郞官)으로 재직 중, 당상(堂上)의 종합된 의견을 가지고 가다가 승지(承旨)가 박형린(朴亨鱗)을 가로막아서 임금에게 보고를 하지 못한 일이 발생하였다. 곧 이러한 사실이 대간(臺諫)에 의해 임금에게 보고되었고, 결국 그 실정을 자세히 아뢰라는 하교가 내려졌다. 이후 사간원에서 그에게 자세한 정황을 알아보려고 하였지만, 바른대로 대답을 하지 않았고, 사헌부(司憲府)에서 그를 체포하여 심문할 것을 건의하자 결국 의금부(義禁府)에 투옥되어 곤욕을 치렀다.

[참고문헌]


[집필자]

정병섭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