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선(李復善)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74BCF5C120U9999X0 |
자(字) | 수초(遂初) |
생년 | ?(미상) |
졸년 | 1504(연산군 10)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광산(光山)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관련정보]
[상세내용]
이복선(李復善)
미상∼1504년(연산군 10). 조선 중기 문신. 자는 수초(遂初)이다.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증조부는 이일영(李日英)이고, 조부는 호조참판 이선제(李先齊)이다. 부친 헌납(獻納) 이시원(李始元)과 모친 김승손(金承孫)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1474년(성종 5)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1474년(성종 5) 폐비 윤씨의 신주와 사당 세우는 일을 반대하였다. 이후 예조참의‧대사간(大司諫)‧이조참의를 지냈다. 김종직(金宗直)의 「조의제문(弔義帝文)」으로 무오사화(戊午士禍)가 일어나자, ‘반신(叛臣)의 율에 따라 논단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1502년(연산군 8) 강원도관찰사로 재임 중 지방관으로서 중앙에 올리는 계문(啓聞)에 아첨이 지나치다하여 탄핵을 받았다. 1504년(연산군 10) 의금부에서 병으로 죽었다.
증조부는 이일영(李日英)이고, 조부는 호조참판 이선제(李先齊)이다. 부친 헌납(獻納) 이시원(李始元)과 모친 김승손(金承孫)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1474년(성종 5)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1474년(성종 5) 폐비 윤씨의 신주와 사당 세우는 일을 반대하였다. 이후 예조참의‧대사간(大司諫)‧이조참의를 지냈다. 김종직(金宗直)의 「조의제문(弔義帝文)」으로 무오사화(戊午士禍)가 일어나자, ‘반신(叛臣)의 율에 따라 논단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1502년(연산군 8) 강원도관찰사로 재임 중 지방관으로서 중앙에 올리는 계문(啓聞)에 아첨이 지나치다하여 탄핵을 받았다. 1504년(연산군 10) 의금부에서 병으로 죽었다.
[참고문헌]
燕山君日記
國朝榜目
國朝榜目
[집필자]
김혜영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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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3 | 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