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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서(黃瑞)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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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정옥(廷玉)
생년?(미상)
졸년?(미상)
시대조선중기
본관평해(平海)
활동분야문신 > 문신
황세통(黃世通)
조부황전(黃詮)
증조부황자중(黃自中)
외조부윤질(尹晊)

[상세내용]

황서(黃瑞)
생졸년 미상.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정옥(廷玉)이고, 본관은 평해(平海)이다. 황자중(黃自中)의 증손으로, 조부는 황전(黃詮)이고, 부친은 황세통(黃世通)이며, 모친은 윤질(尹晊)의 딸이다. 1552년(명종 7) 사과(司果)로서 식년문과에 장원급제하였고, 같은 해 봉상시주부로서 왕이 문신들을 전경(專經: 경서만으로 선비를 시험하는 일)으로 시험을 보았을 때 유일하게 『춘추(春秋)』를 강(講)하였다. 1555년(명종 10) 사헌부지평으로서 사부학당(四部學堂)을 비롯한 관학 교육의 침체상을 지적하고 시정을 촉구하였다. 이후 예조정랑을 거쳐 다시 지평이 되었으나, 장악원정 심전(沈銓)이 이미 주인이 있는 노비를 얻으려고 대간(臺諫)에게 몰래 청탁하여 노비 주인을 관직에서 파면시킨 일이 일어나자 “사민(徙民)으로서 도망하는 자에 대한 포고절목(捕告節目: 범죄자를 잡을 수 없을 경우 일반인으로부터 제보나 고발을 받을 수 있도록 전국에 알리는 수배문 및 처벌 내역)을 엄격하게 이행치 못하였다.”는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 1556년 사간원헌납으로 복직되었으며, 병조정랑, 지평, 홍문관교리부응교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1559년 양남지방에 큰 흉년이 들자 경상도 지역의 어사로 파견되어 수령들의 진휼 활동 여부를 파악하여 중앙에 보고하는 한편 직접 백성들을 구휼하는 데 힘을 쏟았다. 홍문관응교, 의정부검상사인, 홍문관 전한 등을 거쳐 1564년 직제학이 되었다가 승정원동부승지예조참의, 우부승지좌부승지병조참지 등을 거치고, 1566년(명종 21) 청홍도관찰사(淸洪道觀察使)를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明宗實錄
國朝榜目
燃藜室記述

[집필자]


수정일수정내역
2009-09-302009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