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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견(洪石堅)

[요약정보]

UCIG002+AKS-KHF_13D64DC11DACACU9999X0
자(字)언확(彦確)
생년?(미상)
졸년?(미상)
시대조선중기
본관홍주(洪州)
활동분야문신 > 문신
홍빈(洪濱)
조부홍서주(洪敍疇)
증조부홍강(洪剛)

[상세내용]

홍석견(洪石堅)
생졸년 미상.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언확(彦確)이고, 본관은 홍주(洪州)이다. 홍강(洪剛)의 증손으로, 조부는 전라도도사 홍서주(洪敍疇)이며, 부친은 홍빈(洪濱)이다. 1504년(연산군 10)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고, 1520년(중종 15) 별시문과에 병과에 2위로 급제하였다. 이듬해 승정원가주서(承政院假主書)를 거쳐 1524년(중종 19) 정언이 되었다. 정언으로 재직 중 서북면위장(衛將)들이 야인에게 패하여 국가의 위엄을 손상시키고, 군기를 제대로 살피지 못하였으므로 각기 죄의 경중에 따라 나추하거나 파직하기를 청하여 윤허 받았다. 1525년 생원‧진사과 복시 때에 감찰로 차임되었다가 사헌부지평이 되었는데 당시 대사헌 홍언필(洪彦弼)의 집 문에 화살이 꽂힌 사건을 계기로, 대간(臺諫: 사헌부와 사간원)의 소임을 맡고 있으면서 복잡한 사안이나 사람들의 원통함을 풀어주지 못한 책임이 있으니 사헌부 관원들과 함께 관직에서 물러나겠다고 청하였으나 허락되지 않았다. 1528년(중종 23)에는 지방 수령들의 탐학의 폐단을 지적하고 관찰사로 하여금 단속시킬 것을 청하였다. 1529년(중종 24) 세자시강원필선으로 있던 중 동궁의 요속(僚屬)이 되어 세자를 보살피기에는 인품이 떨어진다는 사간원의 탄핵을 받았으며, 같은 해 9월 강원도어사로 파견되어 민심을 살피고 돌아왔다. 이듬해 사헌부장령이 되었으나 필선으로 있을 당시 인품이 바르지 않아 논박받았으므로 대간에 합당하지 않다는 사헌부사간원의 탄핵을 받고 다시 교체되었다.

[참고문헌]

燕山君日記
中宗實錄
國朝榜目
司馬榜目

[집필자]


수정일수정내역
2009-09-302009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