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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룡(李希龍)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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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응단(應端)
생년?(미상)
졸년1592(선조 25)
시대조선중기
본관옥구(沃溝)
활동분야호국 > 의병

[상세내용]

이희룡(李希龍)
미상∼1592년(선조 25). 본관은 옥구(沃溝). 자는 응단(應端).

임진란에 왜적이 쳐들어오자 임금을 따라 의주에 피난하였다가 영남의 적세를 정탐해 오라는 명을 받고 경주 울산 등지를 다니면서 적의 동정을 살피고 의주로 돌아가려다가 충주에서 적에게 발각되었다. 이 때 독신으로 힘써 싸우다가 죽었다. 아들 이문진(李文軫)이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듣고 충주에 가서 부친의 시신을 찾다가 신녕에서 적을 만나 힘써 싸우다가 죽었다. 그의 아내는 남편을 주검을 거두어 장사지내고 전장에서 시아버지의 시신을 찾다가 찾지 못하자 마침내 자결하였다.

1709년(숙종 35년 기축)에 어사 박봉령이 장계하여 이 사실을 조정에 알리니 그에게는 호조참의, 아들 이문진에게는 금부도사, 김씨는 단인을 추증하고 정려(旌閭)하였다.

[참고문헌]

嶺南人物考

[집필자]

이원배
수정일수정내역
2008-12-312008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