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혁(韓重爀)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D55CC911D601D1697X0 |
생년 | ?(미상) |
졸년 | 1697(숙종 23)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청주(淸州)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한구(韓構) |
[상세내용]
한중혁(韓重爀)
미상∼1697년(숙종 23).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승지 한구(韓構)의 아들이다.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으로 민비(閔妃)가 폐위되고 희빈장씨(禧嬪張氏)가 왕비가 되어 남인이 득세하자, 서인 김춘택(金春澤) 등과 함께 폐비민씨의 복위를 도모하고, 자금을 모아 요로의 인물들을 매수하려다가 1694년 함이완(咸以完)의 고발로 발각되었다.
남인의 영수(領袖)인 우의정 민암(閔黯)이 이 사실을 숙종에게 알리고 옥사(獄事)를 일으켜 김춘택 등 수십명과 함께 투옥되었다. 이 사건을 갑술옥사라 한다.
그러나 왕이 민비의 폐위를 후회하고 있던 터라 민암을 사사(賜死)한 뒤 그의 일당을 숙청하고, 소론 남구만(南九萬)을 영의정으로 임명하였다.
그러나 그해 10월 남구만이 “그들은 대담하게도 환국(換局)을 꾀한 자들이니 용서하지 못한다.”고 주장함으로써 드디어 장살(杖殺)되었다.
승지 한구(韓構)의 아들이다.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으로 민비(閔妃)가 폐위되고 희빈장씨(禧嬪張氏)가 왕비가 되어 남인이 득세하자, 서인 김춘택(金春澤) 등과 함께 폐비민씨의 복위를 도모하고, 자금을 모아 요로의 인물들을 매수하려다가 1694년 함이완(咸以完)의 고발로 발각되었다.
남인의 영수(領袖)인 우의정 민암(閔黯)이 이 사실을 숙종에게 알리고 옥사(獄事)를 일으켜 김춘택 등 수십명과 함께 투옥되었다. 이 사건을 갑술옥사라 한다.
그러나 왕이 민비의 폐위를 후회하고 있던 터라 민암을 사사(賜死)한 뒤 그의 일당을 숙청하고, 소론 남구만(南九萬)을 영의정으로 임명하였다.
그러나 그해 10월 남구만이 “그들은 대담하게도 환국(換局)을 꾀한 자들이니 용서하지 못한다.”고 주장함으로써 드디어 장살(杖殺)되었다.
[참고문헌]
肅宗實錄
備邊司謄錄
承政院日記
梅山集
芝陽漫錄
南溪語錄
國朝人物志
備邊司謄錄
承政院日記
梅山集
芝陽漫錄
南溪語錄
國朝人物志
[집필자]
김갑주(金甲周)
명 : "중혁(重爀)"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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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