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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예충(張禮忠)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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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경원(敬源)
생년?(미상)
졸년?(미상)
시대조선중기
활동분야외교 > 역관
출신지강화도

[상세내용]

장예충(張禮忠)
생졸년 미상. 조선 중기의 역관(譯官). 자는 경원(敬源). 강화도 출신.

임진왜란 이후 국가에서는 외교적으로 처리할 일이 대단히 많았는데, 그의 능숙한 말솜씨와 명민한 서류처리는 많은 사건을 해결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

1626년(인조 4) 명나라 사신 강일광(姜日廣)차비관(差備官)으로 수행하다가 갑자기 비를 만나 누추한 촌사(村舍)에 오래 머무르게 되자, 명나라 사신이 이를 몹시 고통스럽게 여기므로 접반(接伴)일행이 위로할 방법을 찾지 못하던 중 그가 나서서 “군자(君子)가 거하는데 어찌 누추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니 강일광은 좋아하면서 고통을 가볍게 여겼다고 하는 일화도 있다.

상대방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그의 말솜씨와 충실하고 신중하면서 명민한 서류처리로 인하여 당시 양반관료들은 그를 상당히 아끼고 중히 여겼으며, 한 사건을 처리할 때마다 관계가 1급씩 올라서 숭록대부지중추부사(崇祿大夫知中樞府事)에까지 올랐으며, 왕으로부터 ‘눌암(訥菴)’이라는 2자와 시가 증여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光海君日記
通文館志

[집필자]

박정자(朴定子)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