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한(李光漢)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74AD11D55CD1689X0 |
생년 | 1640(인조 18) |
졸년 | 1689(숙종 15)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용인(龍仁) |
활동분야 | 무신 > 무신 |
공신호 | 보사공신(保社功臣) |
[상세내용]
이광한(李光漢)
1640년(인조 18)∼1689년(숙종 15). 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용인(龍仁).
증조부는 칠포만호 이정간(李正幹)이고, 조부는 은진현감 이담(李曇)이며, 부친은 운산군수 이중민(李仲敏)이다.
1680년(숙종 6)에 체부병방(體府兵房)으로 있으면서 어영대장 김익훈(金益勳)의 심복이 되어 허견(許堅)의 집을 여러 차례 왕래하면서 정탐하였다. 이어 정초청(精抄廳)에서 정원로(鄭元老)‧강만철(姜萬鐵)을 데리고 승정원에 나아가 역모를 고변하게 하여 이른바 허견의 옥을 일으킴으로써 남인세력을 일망타진하는 데 공을 세웠다.
이로 인하여 보사공신(保社功臣) 3등에 추록되어 용계군(龍溪君)에 봉하여졌으며 이어 영변부사에 임명되었다.
이때 영변부의 약산성(藥山城)‧철옹성(鐵甕城) 등을 보수, 증축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1689년 기사환국으로 서인이 몰려나고 남인이 집권하자 참형을 당하였고, 공훈도 삭탈되었다가 1694년에 서인이 재집권하면서 복작되었다.
증조부는 칠포만호 이정간(李正幹)이고, 조부는 은진현감 이담(李曇)이며, 부친은 운산군수 이중민(李仲敏)이다.
1680년(숙종 6)에 체부병방(體府兵房)으로 있으면서 어영대장 김익훈(金益勳)의 심복이 되어 허견(許堅)의 집을 여러 차례 왕래하면서 정탐하였다. 이어 정초청(精抄廳)에서 정원로(鄭元老)‧강만철(姜萬鐵)을 데리고 승정원에 나아가 역모를 고변하게 하여 이른바 허견의 옥을 일으킴으로써 남인세력을 일망타진하는 데 공을 세웠다.
이로 인하여 보사공신(保社功臣) 3등에 추록되어 용계군(龍溪君)에 봉하여졌으며 이어 영변부사에 임명되었다.
이때 영변부의 약산성(藥山城)‧철옹성(鐵甕城) 등을 보수, 증축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1689년 기사환국으로 서인이 몰려나고 남인이 집권하자 참형을 당하였고, 공훈도 삭탈되었다가 1694년에 서인이 재집권하면서 복작되었다.
[참고문헌]
肅宗實錄
燃藜室記述
용인이씨대동보
鼓山先生文集
燃藜室記述
용인이씨대동보
鼓山先生文集
[집필자]
우인수(禹仁秀)
명 : "광한(光漢)"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
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2011-01-22 | 용인이씨대동보와 고산선생문집(鼓山先生文集)을 참고하여 본관을 미상에서 용인(龍仁)으로 수정함. 족보를 참고하여 생년을 1640년으로 추가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