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취상(尹就商)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24CDE8C0C1D1725X0 |
생년 | ?(미상) |
졸년 | 1725(영조 1)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함안(咸安) |
활동분야 | 무신 > 무신 |
부 | 윤천뢰(尹天賚) |
[상세내용]
윤취상(尹就商)
미상∼1725년(영조 1). 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함안(咸安).
동지중추부사 윤천뢰(尹天賚)의 아들이다.
1676년(숙종 2) 무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양주목사 등 지방관을 역임한 뒤 1701년 총융사에 올랐으며, 이어 어영대장 겸 좌포도대장을 지냈고, 1704년 훈련대장으로 전임되었다가 어머니의 병환으로 일시 사직하였다.
1707년 수원부사로 재기용되어 남한산성 남격대(南格臺)의 축성에 관여하였고, 황해도순무사로 나갔다가 다시 포도대장이 되었으며, 이때 도성 안에서 괘서사건이 발생하여 그 범인을 색출하지 못한 책임으로 파직당하였다.
1712년 다시 총융사가 되었으며 우포도대장을 거쳐 경종 즉위 후 한성좌윤‧병조참판‧동지의금부사를 지냈다. 조정내에서 노론‧소론의 대립이 치열해지면서 1722년(경종 2) 최홍(崔泓) 등이 세제(世弟) 연잉군(延礽君: 뒤의 영조)을 독살하려는 음모에 연루된 혐의를 받았으나 풀려나왔고, 형조판서에 올라 김일경(金一鏡)과 더불어 노론을 탄압, 축출하는 데 앞장섰다. 이로 인하여 1724년 영조 즉위 후 김일경의 일당으로 몰려 노론에 의하여 탄핵, 파직되었으며 국문을 받고 복주(伏誅)되었다.
동지중추부사 윤천뢰(尹天賚)의 아들이다.
1676년(숙종 2) 무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양주목사 등 지방관을 역임한 뒤 1701년 총융사에 올랐으며, 이어 어영대장 겸 좌포도대장을 지냈고, 1704년 훈련대장으로 전임되었다가 어머니의 병환으로 일시 사직하였다.
1707년 수원부사로 재기용되어 남한산성 남격대(南格臺)의 축성에 관여하였고, 황해도순무사로 나갔다가 다시 포도대장이 되었으며, 이때 도성 안에서 괘서사건이 발생하여 그 범인을 색출하지 못한 책임으로 파직당하였다.
1712년 다시 총융사가 되었으며 우포도대장을 거쳐 경종 즉위 후 한성좌윤‧병조참판‧동지의금부사를 지냈다. 조정내에서 노론‧소론의 대립이 치열해지면서 1722년(경종 2) 최홍(崔泓) 등이 세제(世弟) 연잉군(延礽君: 뒤의 영조)을 독살하려는 음모에 연루된 혐의를 받았으나 풀려나왔고, 형조판서에 올라 김일경(金一鏡)과 더불어 노론을 탄압, 축출하는 데 앞장섰다. 이로 인하여 1724년 영조 즉위 후 김일경의 일당으로 몰려 노론에 의하여 탄핵, 파직되었으며 국문을 받고 복주(伏誅)되었다.
[참고문헌]
肅宗實錄
景宗實錄
英祖實錄
國朝榜目
淸選考
景宗實錄
英祖實錄
國朝榜目
淸選考
[집필자]
이문기(李文基)
명 : "취상(就商)"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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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