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서종(吳瑞鍾)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624C11CC885B1693X0 |
생년 | 1693(숙종 19) |
졸년 | 1722(경종 2)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보성(寶城)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오두천(吳斗天) |
[상세내용]
오서종(吳瑞鍾)
1693년(숙종 19)∼1722년(경종 2).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보성(寶城). 오두천(吳斗天)의 아들이다.
1717년(숙종 43) 온양에서 시행된 별시문과에서 병과로 급제하여 환로에 나가 성균관박사가 되었다.
1721년(경종 1) 김창집(金昌集) 등 노론 대신들이 중심이 되어 연잉군(延礽君)을 세제(世弟)로 책봉하자, 이를 둘러싸고 노론과 소론의 대립이 노골화하여, 이듬해에 목호룡(睦虎龍)의 고변을 계기로 소론이 노론을 탄압하는 이른바 임인무옥이라는 대옥사가 일어났다.
노론에 속하였던 그는 이 임인무옥에서 숙종의 국상 때에 세자, 즉 경종을 해치려는 역모에 유경유(柳慶裕)와 더불어 거사를 위한 자금으로 은을 구해주었다는 혐의를 받고 국문 끝에 장폐(杖斃)당하였다.
1717년(숙종 43) 온양에서 시행된 별시문과에서 병과로 급제하여 환로에 나가 성균관박사가 되었다.
1721년(경종 1) 김창집(金昌集) 등 노론 대신들이 중심이 되어 연잉군(延礽君)을 세제(世弟)로 책봉하자, 이를 둘러싸고 노론과 소론의 대립이 노골화하여, 이듬해에 목호룡(睦虎龍)의 고변을 계기로 소론이 노론을 탄압하는 이른바 임인무옥이라는 대옥사가 일어났다.
노론에 속하였던 그는 이 임인무옥에서 숙종의 국상 때에 세자, 즉 경종을 해치려는 역모에 유경유(柳慶裕)와 더불어 거사를 위한 자금으로 은을 구해주었다는 혐의를 받고 국문 끝에 장폐(杖斃)당하였다.
[참고문헌]
景宗實錄
國朝榜目
國朝榜目
[집필자]
이문기(李文基)
명 : "서종(瑞鍾)"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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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