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엄(柳儼)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C720C5C4FFFFB1692X0 |
자(字) | 사숙(思叔) |
호(號) | 성암(省庵) |
시호(諡號) | 혜정(惠靖) |
생년 | 1692(숙종 18) |
졸년 | 1752(영조 28)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진주(晉州[土])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유정진(柳挺晉) |
[관련정보]
[상세내용]
유엄(柳儼)
1692년(숙종 18)∼1752년(영조 28).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土]). 자는 사숙(思叔), 호는 성암(省庵). 중종반정의 공신 유순정(柳順汀)의 후손이며, 유정진(柳挺晉)의 아들이다.
1723년(경종 3)에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이듬해에 정언이 되었다. 영조가 즉위하자 지평으로 등용되어 정언과 지평을 번갈아 하였다.
1728년(영조 4)에 문학(文學), 이듬해에 헌납을 거쳐 수찬으로 임명되었다.
그뒤 부교리‧부응교‧승지 등을 역임하였고, 1731년에 광주부윤(廣州府尹)에 임명되고, 이듬해에 대사간에 발탁되었다.
1735년에 충청도관찰사, 1739년에 황해도관찰사, 1743년에 경기도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예조판서를 지낸 뒤 1745년에 형조판서가 되고, 그해 한성부판윤에 임명되어 진양군(晉陽君)에 봉해졌다.
1729년 천추절(千秋節)을 맞이하여 왕실의 만수무강을 비는 차(箚)를 올려 왕으로부터 『근사록(近思錄)』 한질을 상으로 받았다.
또, 그해 시독관(侍讀官)으로 있으면서 외방사찰(外方寺刹)의 요승(妖僧)을 엄단하여 사찰의 정화를 단행하였다. 문장으로 이름이 높았다. 시호는 혜정(惠靖)이다.
1723년(경종 3)에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이듬해에 정언이 되었다. 영조가 즉위하자 지평으로 등용되어 정언과 지평을 번갈아 하였다.
1728년(영조 4)에 문학(文學), 이듬해에 헌납을 거쳐 수찬으로 임명되었다.
그뒤 부교리‧부응교‧승지 등을 역임하였고, 1731년에 광주부윤(廣州府尹)에 임명되고, 이듬해에 대사간에 발탁되었다.
1735년에 충청도관찰사, 1739년에 황해도관찰사, 1743년에 경기도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예조판서를 지낸 뒤 1745년에 형조판서가 되고, 그해 한성부판윤에 임명되어 진양군(晉陽君)에 봉해졌다.
1729년 천추절(千秋節)을 맞이하여 왕실의 만수무강을 비는 차(箚)를 올려 왕으로부터 『근사록(近思錄)』 한질을 상으로 받았다.
또, 그해 시독관(侍讀官)으로 있으면서 외방사찰(外方寺刹)의 요승(妖僧)을 엄단하여 사찰의 정화를 단행하였다. 문장으로 이름이 높았다. 시호는 혜정(惠靖)이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國朝榜目
增補文獻備考
淸選考
國朝榜目
增補文獻備考
淸選考
[집필자]
김갑주(金甲周)
대표명 | 유엄(柳儼) |
성명 | 유엄(柳儼) |
성명 : "유엄(柳儼)"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
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2010-05-17 | 李昌誼 撰 資憲大夫禮曹判書兼知義禁府春秋館事五衛都摠府都摠管菁陽君柳公諡狀을 참고하여 졸년 1752(영조 28) 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