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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성희(沈聖希)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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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이천(而天)
생년1684(숙종 10)
졸년1747(영조 23)
시대조선중기
본관청송(靑松)
활동분야문신 > 문신
심봉휘(沈鳳輝)

[상세내용]

심성희(沈聖希)
1684년(숙종 10)∼1747년(영조 23).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이천(而天). 능주목사 심봉휘(沈鳳輝)의 아들이다. 약관(弱冠)에 진사가 되어 성균관에 들어가 장의(掌議)가 되었다.

1715년(숙종 41) 유계(兪棨)『가례원류(家禮源流)』 간행때 윤증(尹拯)이 스승인 유계를 배반했다 하여 심히 배척하였고, 이어 이진유(李眞儒)윤증을 비난한 정호(鄭澔)의 발문을 불사르게 하자, 그는 성균관유생들과 함께 이를 항소하고 권당(捲堂)까지 하였으나 소론의 득세로 축출되었다.

얼마 후 노론의 복귀로 익릉참봉(翼陵參奉)에 등용되었고, 1725년(영조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주서가 되었다가 설서로 옮겼다.

그뒤 부수찬을 거치는 등 삼사의 요직을 역임하고 대사간충청경상도관찰사를 거쳐 이조판서대사헌을 역임하였다. 성품이 단아하고 재식이 뛰어났다고 하며, 삼사에 재직할 때는 직언을 잘 하고 외직에 나가서는 화민정속(化民正俗)에 힘써 많은 명현과 효자‧열녀를 정표하였다.

[참고문헌]

肅宗實錄
英祖實錄
國朝榜目
雷淵集

[집필자]

반윤홍(潘允洪)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