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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경(趙尙絅)

[요약정보]

UCIG002+AKS-KHF_13C870C0C1ACBDB1681X0
자(字)자장(子章)
호(號)학당(鶴塘)
시호(諡號)경헌(景獻)
생년1681(숙종 7)
졸년1746(영조 22)
시대조선중기
본관풍양(豊壤)
활동분야문신 > 문신
조도보(趙道輔)
증조부조흡(趙噏)

[상세내용]

조상경(趙尙絅)
1681년(숙종 7)∼1746년(영조 22).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자장(子章), 호는 학당(鶴塘).

풍안군 조흡(趙噏)의 증손으로, 돈녕부 도정 조도보(趙道輔)의 아들이다. 김창협(金昌協)의 문인이다.

1708년(숙종 34) 사마시를 거쳐 1710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1713년 이후 정언지평을 지내고, 1717년 충청좌도암행어사로 다녀와 다시 지평정언수찬교리헌납 등을 역임하였다.

1720년 경종즉위 후 대사간승지이조참의 등을 거쳐, 1722년 신임사화 때 노론계열이라 하여 안주에 유배되었다가 아산에 이배되었다.

1725년(영조 1) 풀려나서 다음해 함경도관찰사로 부임하고, 북관군병(北關軍兵)에 조총을 복습하게 하였다.

1727년 정미환국으로 노론인 정호(鄭澔)민진원(閔鎭遠) 등이 탄핵당하자 이를 변호하다 파직되었다.

1729년 다시 기용되어 한성부좌윤대사헌경기관찰사이조참판을 역임하였고, 1731년 사은 겸 동지부사(謝恩兼冬至副使)청나라에 건너가 『명사조선열전(明史朝鮮列傳)』을 가지고 돌아왔다.

이듬해 가자되어 이조판서에 오르고 이어 형조판서공조판서우참찬을 역임하였으며, 1734년 한성부판윤병조판서에 이르러 군관치사문제(軍官致死問題)로파직되었다.

1736년 다시 기용되어 이조판서수어사(守禦使)병조판서판의금부사를 겸하였고, 각 판서를 두루 거쳐 판돈녕부사한성부판윤을 끝으로 죽었다. 공신의후예이며 노론의 중심인물이다. 시호는 경헌(景獻)이다.

[참고문헌]

肅宗實錄
景宗實錄
英祖實錄
國朝榜目
藥坡漫錄

[집필자]

오갑균(吳甲均)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