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유언명(兪彦明)

[요약정보]

UCIG002+AKS-KHF_13C720C5B8BA85B1666X0
자(字)용회(用晦)
생년1666(현종 7)
졸년?(미상)
시대조선중기
본관기계(杞溪)
활동분야문신 > 문신
유정기(兪正基)

[상세내용]

유언명(兪彦明)
1666년(현종 7)∼미상.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용회(用晦). 판관 유정기(兪正基)의 아들이다.

1699년(숙종 25)에 통덕랑으로서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정언지평 등을 역임하였다.

1703년 지평으로 있을 때에 북성(北城) 쌓는 일을 중지하고 기민을 구하라는 상소를 올려 왕이 가납하는 등 신임을 얻었다. 그리고 박세당(朴世堂)의 훼경(毁經) 사실을 놓고 노론들이 논란을 벌일 적에 이를 옹호하여 소론의 소장으로 지목을 받았다.

1705년 소론 임보(林溥)와 남인 이잠(李潛)이 세자(世子: 뒤의 景宗) 모해설이 있다고 노론 김춘택(金春澤)을 공격하였는데, 이에 연루되어 신문을 받았으나 혐의가 없어 풀려났다.

그뒤 그의 아버지가 후취(後娶)의 행실을 들어 이혼하여줄 것을 청하였는데, 처음에는 여러 대신들이 의논하여 이혼을 결정하였으나 음행의 사실이 없어 국전(國典)에 어긋난다 하여 허락받지 못하였다.

그뒤 계모는 관아에서 유언명에게 죄를 전가하였으나, 그는 아버지에게 누가 미칠 것을 두려워하여 변명도 못하고 관계에서 물러났다.

특히, 문장이 뛰어나 재상 윤지완(尹趾完)도 칭송한 바 있었다.

[참고문헌]

肅宗實錄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집필자]

김양수(金良洙)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