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만리(具萬里)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D6CB9CCB9ACB1656X0 |
자(字) | 일원(一元) |
생년 | 1656(효종 7) |
졸년 | 1721(경종 1)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능성(綾城)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구문주(具文周) |
외조부 | 이명하(李鳴夏) |
[상세내용]
구만리(具萬里)
1656년(효종 7)∼1721년(경종 1).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능성(綾城). 자는 일원(一元).
부친은 구문주(具文周)이고, 모친은 이명하(李鳴夏)의 딸이다.
1699년(숙종 25)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정언‧사서‧지평을 역임하였다.
1716년 장령으로 있을 때 이돈(李墩)에 대한 죄과를 공정하게 조사하지 않고 처벌하는 것은 부당하므로 재조사할 것을 상소하였으나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지 않자 재조사를 상소했던 죄로 진해현감(鎭海縣監)으로 강등되었다.
1717년 야인(野人)으로서 정권장악을 위해 서로 경쟁하던 남인과 소론에 대한 숙종의 정책이 잘못되었음을 비판하는 상소를 연명(聯名)으로 올렸다.
그가 죽은 뒤인 1768년(영조 44)에는 대신(臺臣)으로서의 그의 행동이 높이 평가되어 손자인 구수국(具壽國)이 공조참의에 특별제수되었다.
부친은 구문주(具文周)이고, 모친은 이명하(李鳴夏)의 딸이다.
1699년(숙종 25)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정언‧사서‧지평을 역임하였다.
1716년 장령으로 있을 때 이돈(李墩)에 대한 죄과를 공정하게 조사하지 않고 처벌하는 것은 부당하므로 재조사할 것을 상소하였으나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지 않자 재조사를 상소했던 죄로 진해현감(鎭海縣監)으로 강등되었다.
1717년 야인(野人)으로서 정권장악을 위해 서로 경쟁하던 남인과 소론에 대한 숙종의 정책이 잘못되었음을 비판하는 상소를 연명(聯名)으로 올렸다.
그가 죽은 뒤인 1768년(영조 44)에는 대신(臺臣)으로서의 그의 행동이 높이 평가되어 손자인 구수국(具壽國)이 공조참의에 특별제수되었다.
[참고문헌]
肅宗實錄
景宗實錄
英祖實錄
國朝榜目
景宗實錄
英祖實錄
國朝榜目
[집필자]
주웅영(朱雄英)
대표명 | 구만리(具萬里) |
성명 | 구만리(具萬理) |
성명 : "구만리(具萬理)"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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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