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직(金昌直)
[요약정보]
| UCI | G002+AKS-KHF_13AE40CC3DC9C1B1653X0 |
| 자(字) | 계달(季達) |
| 생년 | 1653(효종 4) |
| 졸년 | 1702(숙종 28) |
| 시대 | 조선중기 |
| 본관 | 안동(安東[新]) |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 부 | 김수증(金壽增) |

[상세내용]
김창직(金昌直)
1653년(효종 4)∼1702년(숙종 28).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新]). 자는 계달(季達).
부친은 공조참판 김수증(金壽增)이다.
1686년(숙종 12) 통덕(通德)의 신분으로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주서‧병조좌랑을 거쳐 1694년 설서‧사서, 이듬해에는 정언에 오르고, 연이어 지평‧수찬‧사서‧지평이 되었다가 토산현감에 올랐다.
1699년 다시 내직으로 들어와 교리를 지냈으며, 이듬해에는 지평‧정언이 되어 관기(官紀)의 확립과 의리의 필요성을 주장하였다. 설서‧사서‧문학 등을 여러 차례 역임하면서 세자(世子)의 교육을 위해 힘썼다.
부친은 공조참판 김수증(金壽增)이다.
1686년(숙종 12) 통덕(通德)의 신분으로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주서‧병조좌랑을 거쳐 1694년 설서‧사서, 이듬해에는 정언에 오르고, 연이어 지평‧수찬‧사서‧지평이 되었다가 토산현감에 올랐다.
1699년 다시 내직으로 들어와 교리를 지냈으며, 이듬해에는 지평‧정언이 되어 관기(官紀)의 확립과 의리의 필요성을 주장하였다. 설서‧사서‧문학 등을 여러 차례 역임하면서 세자(世子)의 교육을 위해 힘썼다.
[참고문헌]
肅宗實錄
國朝人物考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國朝榜目
[집필자]
김호종(金昊鍾)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