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길(金萬吉)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E40B9CCAE38B1645X0 |
자(字) | 자적(子迪) |
생년 | 1645(인조 23) |
졸년 | 1697(숙종 24)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광산(光山)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김익후(金益喣) |
묘소 | 화성군 동탄면 장지리 |
[관련정보]
[상세내용]
김만길(金萬吉)
1645년(인조 23)∼1697년(숙종 24)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자적(子迪)이다. 부친은 승문원 부정자 김익후(金益喣)이다.
1682년(숙종 8) 주부로서 춘당대문과(春塘臺文科)에 을과로 급제하여 지평이 된 뒤 정언‧부교리‧부수찬‧교리‧수찬을 지냈고, 1688년 강원도관찰사가 되었다.
1689년 3월 숙부 김익훈(金益勳)의 신원을 위해 사판(仕板) 삭제를 청하다가 변방으로 귀양갔다.
1694년 갑술환국으로 다시 등용되어 동부승지가 되고 부제학‧전라도관찰사를 거쳐 1697년 이조참의가 되었다. 묘(墓)는 화성군 동탄면 장지리에 있다.
1682년(숙종 8) 주부로서 춘당대문과(春塘臺文科)에 을과로 급제하여 지평이 된 뒤 정언‧부교리‧부수찬‧교리‧수찬을 지냈고, 1688년 강원도관찰사가 되었다.
1689년 3월 숙부 김익훈(金益勳)의 신원을 위해 사판(仕板) 삭제를 청하다가 변방으로 귀양갔다.
1694년 갑술환국으로 다시 등용되어 동부승지가 되고 부제학‧전라도관찰사를 거쳐 1697년 이조참의가 되었다. 묘(墓)는 화성군 동탄면 장지리에 있다.
[참고문헌]
肅宗實錄
燃藜室記述
國朝榜目
艮齋漫筆
疏齋集
燃藜室記述
國朝榜目
艮齋漫筆
疏齋集
[집필자]
이원근(李元根)
명 : "만길(萬吉)"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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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