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후(朴慶後)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BC15ACBDD6C4B1644X0 |
자(字) | 휴경(休卿) |
호(號) | 만오(晩悟) |
생년 | 1644(인조 22)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함양(咸陽)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박상욱(朴尙郁) |
[관련정보]
[상세내용]
박경후(朴慶後)
1644년(인조 22)∼미상.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휴경(休卿), 호는 취옹(醉翁)‧만오(晩悟). 박상욱(朴尙郁)의 아들이다.
1669년(현종 10)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며, 1675년(숙종 1) 통덕랑(通德郞)으로서 숙종의 즉위를 축하하는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그뒤 승정원주서‧홍문관수찬‧사간원정언 등 삼사(三司)의 요직을 두루 역임하였으며, 1682년 통신사 종사관으로 일본에 파견되기도 하였다.
그뒤 1690년 승지를 거쳐 황해도관찰사로 보임되었고, 1692년(숙종 18) 청나라에서 사신이 오자 접반사(接伴使)로 활약하였으며, 이어 병조참판에 올랐다.
글씨를 잘 써서 당대에 이름이 있었고, 양주(楊州)의 좌찬성박대립비(左贊成朴大立碑), 하양(河陽)의 통제사김시성비(統制使金是聲碑) 등의 유필(遺筆)이 남아 있다.
1669년(현종 10)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며, 1675년(숙종 1) 통덕랑(通德郞)으로서 숙종의 즉위를 축하하는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그뒤 승정원주서‧홍문관수찬‧사간원정언 등 삼사(三司)의 요직을 두루 역임하였으며, 1682년 통신사 종사관으로 일본에 파견되기도 하였다.
그뒤 1690년 승지를 거쳐 황해도관찰사로 보임되었고, 1692년(숙종 18) 청나라에서 사신이 오자 접반사(接伴使)로 활약하였으며, 이어 병조참판에 올랐다.
글씨를 잘 써서 당대에 이름이 있었고, 양주(楊州)의 좌찬성박대립비(左贊成朴大立碑), 하양(河陽)의 통제사김시성비(統制使金是聲碑) 등의 유필(遺筆)이 남아 있다.
[참고문헌]
肅宗實錄
國朝榜目
槿域書畵徵
國朝榜目
槿域書畵徵
[집필자]
이문기(李文基)
성명 : "박경후(朴慶後)"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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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