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만회(洪萬恢)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D64DB9CCD68CB1643X0 |
생년 | 1643(인조 21) |
졸년 | 1709(숙종 35)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풍산(豊山)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영안위(永安尉) |
부 | 홍주원(洪柱元) |
모 | 정명공주(貞明公主) |
[상세내용]
홍만회(洪萬恢)
1643년(인조 21)∼1709년(숙종 35).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부친은 영안위(永安尉) 홍주원(洪柱元)이며, 모친은 선조의 딸 정명공주(貞明公主)이다.
1669년(현종 10) 사마시에 합격하고, 1675년(숙종 1) 음보로 장악원직장이 되었으며, 여러 벼슬을 거쳐 외직으로 나가 안악군수‧풍덕부사를 역임하고, 1709년에는 장례원판결사에 보임되었다가, 그해에 죽었다.
평소 성격이 곧고 직언(直言)을 잘 하였다고 하는데, 1692년(숙종 18) 본가에 있던 종려목(棕櫚木: 卉木)을 숙종이 강제로 왕궁 후원에 옮겨 심었다가 그의 직언으로 되돌려주었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부친은 영안위(永安尉) 홍주원(洪柱元)이며, 모친은 선조의 딸 정명공주(貞明公主)이다.
1669년(현종 10) 사마시에 합격하고, 1675년(숙종 1) 음보로 장악원직장이 되었으며, 여러 벼슬을 거쳐 외직으로 나가 안악군수‧풍덕부사를 역임하고, 1709년에는 장례원판결사에 보임되었다가, 그해에 죽었다.
평소 성격이 곧고 직언(直言)을 잘 하였다고 하는데, 1692년(숙종 18) 본가에 있던 종려목(棕櫚木: 卉木)을 숙종이 강제로 왕궁 후원에 옮겨 심었다가 그의 직언으로 되돌려주었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참고문헌]
肅宗實錄
耳溪集
耳溪集
[집필자]
이문기(李文基)
명 : "만회(萬恢)"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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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