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명(鄭善鳴)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815C120BA85B1636X0 |
자(字) | 성원(聲遠) |
생년 | 1636(인조 14) |
졸년 | 1694(숙종 20)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진양(晉陽) |
활동분야 | 문신 |
부 | 정백순(鄭百順) |
[관련정보]
[상세내용]
정선명(鄭善鳴)
1636년(인조 14)~1694년(숙종 20). 조선 중기 문신. 자는 성원(聲遠)이다. 본관은 진양(晉陽)이다.
친부는 정백현(鄭百顯)이고, 양부는 숙부인 형조정랑(刑曹正郞) 정백순(鄭百順)이다.
1669년(현종 10) 생원진사시에서 진사 3등 54위로 합격하였으며, 1678년(숙종 4) 문과에서 병과 3위로 급제하였다. 1685년(숙종 11) 사헌부 지평(持平)에 임명되었으며, 1687년(숙종 13)에는 사간원 정언(正言)이 되었다. 1689년(숙종 15)년에는 다시 지평으로 임용되었는데, 대사헌 목창명(睦昌明)과 함께 송시열(宋時烈)의 죄를 논하면서 ‘엄히 국문해야 국가의 형전이 바로 잡힐 것’이라며 송시열의 처벌을 적극 주장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기사환국(己巳換局)이 일어났다.
기사환국 후 사헌부 장령(掌令)으로 자리하면서 대간(臺諫)에서 활동하였다. 그러나 1694년(숙종 20) 갑술환국(甲戌換局)이 일어났고, 김수항(金壽恒)을 무고하여 상소를 올린 무리로 지목되어 변방으로 귀양을 갔으며, 왕비를 폐출할 때도 상소를 올린 것이 빌미가 되어 더 먼곳으로 귀양을 떠났다가 귀양지에서 죽었다.
친부는 정백현(鄭百顯)이고, 양부는 숙부인 형조정랑(刑曹正郞) 정백순(鄭百順)이다.
1669년(현종 10) 생원진사시에서 진사 3등 54위로 합격하였으며, 1678년(숙종 4) 문과에서 병과 3위로 급제하였다. 1685년(숙종 11) 사헌부 지평(持平)에 임명되었으며, 1687년(숙종 13)에는 사간원 정언(正言)이 되었다. 1689년(숙종 15)년에는 다시 지평으로 임용되었는데, 대사헌 목창명(睦昌明)과 함께 송시열(宋時烈)의 죄를 논하면서 ‘엄히 국문해야 국가의 형전이 바로 잡힐 것’이라며 송시열의 처벌을 적극 주장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기사환국(己巳換局)이 일어났다.
기사환국 후 사헌부 장령(掌令)으로 자리하면서 대간(臺諫)에서 활동하였다. 그러나 1694년(숙종 20) 갑술환국(甲戌換局)이 일어났고, 김수항(金壽恒)을 무고하여 상소를 올린 무리로 지목되어 변방으로 귀양을 갔으며, 왕비를 폐출할 때도 상소를 올린 것이 빌미가 되어 더 먼곳으로 귀양을 떠났다가 귀양지에서 죽었다.
[참고문헌]
[집필자]
나영훈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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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