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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성(李晩成){1}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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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기숙(器叔)
생년1636(인조 14)
졸년1708(숙종 34)
시대조선중기
본관전주(全州)
활동분야문신 > 문신
이정영(李正英)
외조부유기선(柳基善)

[상세내용]

이만성(李晩成)
1636년(인조 14)∼1708년(숙종 34).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기숙(器叔).

부친은 판중추부사 이정영(李正英)이고, 모친은 유기선(柳基善)의 딸이다.

1666년(현종 7) 진사시에 합격하고 문음으로 입사(入仕)하여 1670년 동궁세마(東宮洗馬)가 되었다. 이어서 시직(侍直)부수(副率) 등을 거쳐 형조좌랑이 되었다.

이때 위엄으로써 직사(職事)처리를 공정히 하여 간리(奸吏)의 횡포를 근절시켰다. 이어서 호조정랑에 승진하여 평강현감으로 외직에 나갔는데, 향리의 불법을 금하고 포탈된 조세 징수 등을 추진하여 혜정(惠政)을 베풀었다.

1683년(숙종 9) 평시서령(平市署令)을 거쳐 안성군수가 되어 혜정을 베풀고 동헌을 중수하였다.

1689년 기사환국이 일어나 남인이 집권하자 사직하였고, 1694년 갑술옥사를 계기로 재서용되어 한성부판관이 되었다. 곧 성천부사에 임명되었으나 죄인을 치죄하다 죽게 하여 파직되었다.

1696년 선혜랑을 거쳐 성주목사장악원첨정강화부경력(江華府經歷)선공감부정예빈시정 등을 역임하고, 1708년 호군을 거쳐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에 이르렀다.

그는 급제를 하지 않아 주로 관리직을 역임하였지만, 천성이 엄중하여 남과의 교제를 많이 하지 않았으며, 가정에서 서사(書史)의 섭렵에만 힘을 기울였다.

[참고문헌]

肅宗實錄
國朝榜目
謙齋集

[집필자]

장동익(張東翼)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