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방걸(金邦杰)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E40BC29AC78B1623X0 |
자(字) | 사흥(士興) |
호(號) | 지촌(芝村) |
생년 | 1623(인조 1) |
졸년 | 1695(숙종 21)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의성(義城)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김시온(金是榲) |

[상세내용]
김방걸(金邦杰)
1623년(인조 1)∼1695년(숙종 21).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사흥(士興), 호는 지촌(芝村).
부친은 김시온(金是榲)이다.
1660년(현종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675년 지평, 이듬해 정언을 거쳐 장령이 되어 이서(吏胥)들의 방납(防納)으로 인한 백성들의 피해를 상소하였다.
그뒤 부수찬‧수찬 등을 지내고 1689년 사간이 되었으나, 그해 인현왕후(仁顯王后) 민씨(閔氏)가 폐위되자 간관(諫官)으로 왕의 과오를 사전에 방지하지 못한 데 책임을 느껴 낙향했다.
이듬해 승지가 되었으며 1692년에 대사간, 이듬해 대사성을 지냈다.
저서로는 『지촌문집』이 있다.
부친은 김시온(金是榲)이다.
1660년(현종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675년 지평, 이듬해 정언을 거쳐 장령이 되어 이서(吏胥)들의 방납(防納)으로 인한 백성들의 피해를 상소하였다.
그뒤 부수찬‧수찬 등을 지내고 1689년 사간이 되었으나, 그해 인현왕후(仁顯王后) 민씨(閔氏)가 폐위되자 간관(諫官)으로 왕의 과오를 사전에 방지하지 못한 데 책임을 느껴 낙향했다.
이듬해 승지가 되었으며 1692년에 대사간, 이듬해 대사성을 지냈다.
저서로는 『지촌문집』이 있다.
[참고문헌]
肅宗實錄
嶺南人物考
燃藜室記述
國朝榜目
嶺南人物考
燃藜室記述
國朝榜目
[집필자]
김일기(金馹起)
대표명 | 김방걸(金邦杰) |
성명 | 김방걸(金邦杰) |
자 | 사흥(士興) |
호 | 김지촌방걸(金芝村邦杰) |
성명 : "김방걸(金邦杰)"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
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