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여정(申汝挺)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2E0C5ECC815B1615X0 |
자(字) | 설백(雪栢) |
생년 | 1615(광해군 7) |
졸년 | 1651(효종 2)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평산(平山)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상세내용]
신여정(申汝挺)
1615년(광해군 7)∼1651년(효종 2). 조선 중기 문신‧유학자. 자는 설백(雪栢)이다. 본관은 평산(平山)이다.
이조판서(吏曹判書) 신상(申鏛)의 후손으로, 고조는 신화국(申華國)이고, 증조부는 도순변사(都巡邊使) 신립(申砬)이며, 조부는 영의정(領議政) 평성부원군(平城府院君) 충익공(忠翼公) 신경진(申景禛)이다. 부친 가선대부(嘉善大夫) 평흥군(平興君) 행안동대도호부사(行安東大都護府使) 신준(申埈)과 모친 부사(府使) 김질(金晊)의 딸 안동김씨(安東金氏)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동생 신여매(申汝邁)‧신여식(申汝拭)이 있다. 부인은 두 명을 두었는데, 첫째 부인은 판서 김신국(金藎國)의 딸 청풍김씨(淸風金氏)이고, 둘째 부인은 도사(都事) 이정관(李廷觀)의 딸 전의이씨(全義李氏)이다.
어려서부터 재주가 비범하고 기상이 뛰어났으며, 성품이 후덕하였다. 가법(家法)을 지켜 자기 수양에 독실하였으며, 관직에 나아가서는 신중하게 판단하고 태만함을 경계하고 청렴하도록 노력하였다.
1635년(인조 13) 증광시 진사 3등 49위로 합격한 후 빙고별검(冰庫別檢)에 제수되었다. 이후 하위 관직을 거치다가 재직 중에 생을 마감하였다.
사후 좌승지(左承旨)에 추증되었다가, 이후 의정부영의정(議政府領議政) 평녕군(平寧君)에 추증되었다.
슬하에 아들이 없어 동생 신여식의 아들 신완(申琓)을 양자로 들였다.
이조판서(吏曹判書) 신상(申鏛)의 후손으로, 고조는 신화국(申華國)이고, 증조부는 도순변사(都巡邊使) 신립(申砬)이며, 조부는 영의정(領議政) 평성부원군(平城府院君) 충익공(忠翼公) 신경진(申景禛)이다. 부친 가선대부(嘉善大夫) 평흥군(平興君) 행안동대도호부사(行安東大都護府使) 신준(申埈)과 모친 부사(府使) 김질(金晊)의 딸 안동김씨(安東金氏)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동생 신여매(申汝邁)‧신여식(申汝拭)이 있다. 부인은 두 명을 두었는데, 첫째 부인은 판서 김신국(金藎國)의 딸 청풍김씨(淸風金氏)이고, 둘째 부인은 도사(都事) 이정관(李廷觀)의 딸 전의이씨(全義李氏)이다.
어려서부터 재주가 비범하고 기상이 뛰어났으며, 성품이 후덕하였다. 가법(家法)을 지켜 자기 수양에 독실하였으며, 관직에 나아가서는 신중하게 판단하고 태만함을 경계하고 청렴하도록 노력하였다.
1635년(인조 13) 증광시 진사 3등 49위로 합격한 후 빙고별검(冰庫別檢)에 제수되었다. 이후 하위 관직을 거치다가 재직 중에 생을 마감하였다.
사후 좌승지(左承旨)에 추증되었다가, 이후 의정부영의정(議政府領議政) 평녕군(平寧君)에 추증되었다.
슬하에 아들이 없어 동생 신여식의 아들 신완(申琓)을 양자로 들였다.
[참고문헌]
屛溪集
CD-ROM 司馬榜目(韓國精神文化硏究院)
CD-ROM 司馬榜目(韓國精神文化硏究院)
[집필자]
정병섭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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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3 | 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