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석(趙胤錫)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870C724C11DB1615X0 |
자(字) | 백승(伯承) |
호(號) | 용은(慵隱) |
생년 | 1615(광해군 7) |
졸년 | 1664(현종 5)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양주(楊州)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조창원(趙昌遠) |
외조부 | 최철견(崔鐵堅) |
[관련정보]
[상세내용]
조윤석(趙胤錫)
1615년(광해군 7)∼1664년(현종 5).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백승(伯承), 호는 용은(慵隱).
예문관대제학을 지낸 조말생(趙末生)의 후손으로, 인조의 국구(國舅) 조창원(趙昌遠)의 아들이며, 모친은 대사간 최철견(崔鐵堅)의 딸이다. 김집(金集)의 문인으로 1642년(인조 20)에 생원‧진사 양시에 합격하였다.
이듬해 세마(洗馬)에 기용된 뒤 빙고별검(氷庫別檢)‧한성참군(漢城參軍)‧귀후서별제(歸厚署別提), 형조와 호조의 좌랑을 거쳐 양성현감이 되었다.
1656년(효종 7)에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지평‧장령‧정언‧헌납‧문학‧직강‧사예‧수찬‧교리 등을 역임하였다.
1659년에 현종이 즉위하자 산릉도감도청(山陵都監都廳)이 되었다. 아울러 승지를 거쳐 상의원정(尙衣院正)‧호조참의‧예조참의‧판결사 등을 역임하였다.
예문관대제학을 지낸 조말생(趙末生)의 후손으로, 인조의 국구(國舅) 조창원(趙昌遠)의 아들이며, 모친은 대사간 최철견(崔鐵堅)의 딸이다. 김집(金集)의 문인으로 1642년(인조 20)에 생원‧진사 양시에 합격하였다.
이듬해 세마(洗馬)에 기용된 뒤 빙고별검(氷庫別檢)‧한성참군(漢城參軍)‧귀후서별제(歸厚署別提), 형조와 호조의 좌랑을 거쳐 양성현감이 되었다.
1656년(효종 7)에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지평‧장령‧정언‧헌납‧문학‧직강‧사예‧수찬‧교리 등을 역임하였다.
1659년에 현종이 즉위하자 산릉도감도청(山陵都監都廳)이 되었다. 아울러 승지를 거쳐 상의원정(尙衣院正)‧호조참의‧예조참의‧판결사 등을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孝宗實錄
顯宗實錄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顯宗實錄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집필자]
신해순(申解淳)
대표명 | 조윤석(趙胤錫) |
성명 | 조윤석(趙胤錫) |
성명 : "조윤석(趙胤錫)"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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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