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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내양(趙來陽)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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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장길(長吉)
호(號)도산(道山)
생년1614(광해군 6)
졸년1648(인조 26)
시대조선중기
본관풍양(豊壤)
활동분야유생
조익(趙翼)

[상세내용]

조내양(趙來陽)
1614년(광해군 6)∼1648년(인조 26). 조선 중기 유학자. 자는 장길(長吉)이고, 호는 도산(道山)이다. 본관은 풍양(豊壤)이다.

고조는 함경남도병마절도사(咸鏡南道兵馬節度使) 증좌찬성(贈左贊成) 한풍군(漢豊君) 조안국(趙安國)이고, 증조부는 의빈부도사(儀賓府都事) 증좌찬성 조간(趙侃)이며, 조부는 선공감첨정(繕工監僉正) 증영의정(贈領議政) 조형중(趙瑩中)이다. 부친 가선대부(嘉善大夫) 행용양위부호군(行龍驤衛副護軍) 조익(趙翼)과 모친 군수(郡守) 현덕량(玄德良)의 딸 성주현씨(星州玄氏) 사이에서 5남 중 4남으로 태어났다. 형은 조몽양(趙夢陽)‧조진양(趙進陽)‧조복양(趙復陽)이고, 동생은 조현양(趙顯陽)이다. 부인은 병조판서(兵曹判書) 이시백(李時白)의 딸 연안이씨(延安李氏)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시문(詩文)에 능하여 20세가 되기 전에 시문으로 명성이 높았다.

1633년(인조 11) 식년시에서 진사로 합격하였다. 이후 병자호란이 발생하여 과거에 대한 뜻을 접고,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사후 좌승지(左承旨)에 추증되었다.

청렴하고 학식과 덕망을 갖춰서, 교우들 사이에서 명망이 높았다. 효성이 지극하여 모친상을 치르고 난 뒤, 후유증으로 35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였다.

저서로는 시문집 『도산유고(道山遺稿)』가 있다. 이 서적은 형 조복양의 시문집인 『송곡선생집(松谷先生集)』에도 부록으로 실려 있다.

[참고문헌]

CD-ROM 사마방목(司馬榜目)

[집필자]

정병섭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