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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보(鄭世輔)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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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덕재(德載)
생년1613(광해군 5)
졸년?(미상)
시대조선중기
본관하동(河東)
활동분야문신
정복길(鄭復吉)

[상세내용]

정세보(鄭世輔)
1613년(광해군 5)~미상. 조선 중기 문신. 자는 덕재(德載)이다. 본관은 하동(河東)이고, 출신지는 한양(漢陽)이다.

증조부는 정기문(鄭起文)이고, 조부는 정광적(鄭光績)이며, 부친은 정복길(鄭復吉)이다. 외조부는 윤공(尹珙)이다.

1639년(인조 17년) 식년시에 진사 3등 69위로 합격하였고, 1642년(인조 20) 식년시에서 을과 1위로 문과 급제했다.

1649년(인조 27) 7월에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이 되었고, 같은 해 11월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이 되어 내수사(內需司) 노비의 복호(復戶)에 따른 폐단이 심하니 내수사를 철폐할 것을 아뢰었다. 1657년(효종 8) 5월에 16일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이 되었으나, 같은 해 5월 26일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강화부유수(江華府留守)로 책임을 다하지 못하여 유배된 동주(東洲) 이민구(李敏求)의 임용을 대간(臺諫)으로서 막지 못하였다며 홍문관(弘文館)의 탄핵을 받았다. 1661년(현종 2)에 순천부사(順天府使)로 재직 중 탐욕으로 물의를 일으켜 관직에서 교체되었고, 돌아올 때 남은 월봉(月俸)이라며 쌀과 물품을 배로 운반한 일로 의금부의 조사를 받아 직첩을 빼앗겼다. 1666년(현종 7) 황해도 평산부사(平山府使)에 임명되었으나 순천부사로 재직 중 일으킨 물의로 사헌부장령 경명(景明) 민광소(閔光熽)의 탄핵을 받아 관직에서 교체되었다.

[참고문헌]


[집필자]

박경이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