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영(李哲英)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74CCA0C601B1613X0 |
자(字) | 사명(士明) |
생년 | 1613(광해군 5) |
졸년 | 1662(현종 3)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전주(全州)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상세내용]
이철영(李哲英)
1613년(광해군 5)∼1662년(현종 3). 조선 중기 문신. 자는 사명(士明)이다.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거주지는 한양(漢陽)이다.
정종의 아들 덕천군(德泉君)의 후손으로, 증조부는 증찬성(贈贊成) 이수광(李秀光)이고, 조부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증영의정(贈領議政) 이유간(이惟侃)이다. 부친 영의정 백헌(白軒) 이경석(李景奭)과 모친 관찰사 증영의정 유색(柳穡)의 딸 정경부인(貞敬夫人) 전주유씨(全州柳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두 명의 부인을 두었는데, 첫째 부인은 사옹원정(司饔院正) 오행민(吳行敏)의 딸 숙인(淑人) 보성오씨(寶城吳氏)이고, 둘째 부인은 유반(兪槃)의 딸 기계유씨(杞溪兪氏)이다.
1646년(인조 24) 식년시 생원 2등 7위로 합격한 후, 금부도사(禁府都事)‧사섬시주부(司贍寺主簿)‧사재감주부(司宰監主簿)‧활인서별제(活人署別提)‧평시서령(平市署令)‧양천현령(陽川縣令) 등을 역임하였다.
엄격하고 바른 성품과 온순하고 인정이 두터운 행실을 지녔으며, 효성과 우애가 독실하였다. 집안에서 출입할 때는 말과 행동을 조심하였으며, 개와 말[馬]한테 조차 큰소리를 내는 법이 없었다. 집안 살림은 넉넉하지 않았지만 임지에 나가서 재물을 탐하는 일이 없었으며, 가정을 화목하게 다스리는 일에 힘썼다.
슬하에 2남 5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정랑(正郞) 이우성(李羽成)과 이하성(李廈成)이다.
정종의 아들 덕천군(德泉君)의 후손으로, 증조부는 증찬성(贈贊成) 이수광(李秀光)이고, 조부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증영의정(贈領議政) 이유간(이惟侃)이다. 부친 영의정 백헌(白軒) 이경석(李景奭)과 모친 관찰사 증영의정 유색(柳穡)의 딸 정경부인(貞敬夫人) 전주유씨(全州柳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두 명의 부인을 두었는데, 첫째 부인은 사옹원정(司饔院正) 오행민(吳行敏)의 딸 숙인(淑人) 보성오씨(寶城吳氏)이고, 둘째 부인은 유반(兪槃)의 딸 기계유씨(杞溪兪氏)이다.
1646년(인조 24) 식년시 생원 2등 7위로 합격한 후, 금부도사(禁府都事)‧사섬시주부(司贍寺主簿)‧사재감주부(司宰監主簿)‧활인서별제(活人署別提)‧평시서령(平市署令)‧양천현령(陽川縣令) 등을 역임하였다.
엄격하고 바른 성품과 온순하고 인정이 두터운 행실을 지녔으며, 효성과 우애가 독실하였다. 집안에서 출입할 때는 말과 행동을 조심하였으며, 개와 말[馬]한테 조차 큰소리를 내는 법이 없었다. 집안 살림은 넉넉하지 않았지만 임지에 나가서 재물을 탐하는 일이 없었으며, 가정을 화목하게 다스리는 일에 힘썼다.
슬하에 2남 5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정랑(正郞) 이우성(李羽成)과 이하성(李廈成)이다.
[참고문헌]
CD-ROM 司馬榜目(韓國精神文化硏究院)
晩靜堂集
晩靜堂集
[집필자]
이원배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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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3 | 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