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렴(金𥖝)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AE40B834FFFFB1612X0 |
자(字) | 여용(汝用) |
호(號) | 묵재(黙齋) |
생년 | 1612(광해군 4) |
졸년 | 1659(효종 10)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광산(光山) |
활동분야 | 학자 > 유생 |
[상세내용]
김렴(金𥖝)
1612년(광해군 4)∼1659년(효종 10). 조선 중기 유학자. 자는 여용(汝用)이고, 호는 묵재(黙齋)이다.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증조부는 김부의(金富儀)이고, 조부는 김해(金垓)이며, 부친은 김광계(金光繼)이고, 생부는 김광실(金光實)이다. 외조부는 광주이씨(廣州李氏)이고, 처부는 광주이씨(廣州李氏) 이윤우(李潤雨)이다.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관직은 좌승지(左承旨) 등을 지냈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 의병을 일으켜 죽령(竹嶺)까지 나아갔으나 청나라와 화친했다는 소식을 듣고 돌아와 평생 은거하다 생을 마감하였다.
증조부는 김부의(金富儀)이고, 조부는 김해(金垓)이며, 부친은 김광계(金光繼)이고, 생부는 김광실(金光實)이다. 외조부는 광주이씨(廣州李氏)이고, 처부는 광주이씨(廣州李氏) 이윤우(李潤雨)이다.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관직은 좌승지(左承旨) 등을 지냈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 의병을 일으켜 죽령(竹嶺)까지 나아갔으나 청나라와 화친했다는 소식을 듣고 돌아와 평생 은거하다 생을 마감하였다.
[참고문헌]
『갈암집(葛庵集)』 卷6, 行狀, [처사 묵재 김공행장(處士默齋金公行狀)]
[집필자]
유치석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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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3 | 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