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일유(林一儒)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84C77CC720B1611X0 |
자(字) | 노수(魯叟) |
생년 | 1611(광해군 3) |
졸년 | 1684(숙종 10)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나주(羅州)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상세내용]
임일유(林一儒)
1611년(광해군 3)∼1684년(숙종 10). 조선 중기 문신. 자는 노수(魯叟)이다. 본관은 나주(羅州)이고, 거주지도 전라남도 나주이다.
증조부는 승정원정자(承政院正字) 증병조판서(贈兵曹判書) 임복(林復)이고, 조부는 증승정원좌승지(贈承政院左承旨) 임협(林悏)이다. 부친 통훈대부(通訓大夫) 상주목사(尙州牧使) 증이조참의(贈吏曹參議) 임타(林㙐)와 모친 참봉(參奉) 김우급(金禹伋)의 딸 광주김씨(光州金氏) 사이에서 3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동생 임상유(林相儒)‧임장유(林長儒)가 있다. 두 명의 부인을 두었는데, 첫째 부인은 첨지(僉知) 박호(朴濠)의 딸 증정부인(贈貞夫人) 박씨(朴氏)이고, 둘째 부인은 세마(洗馬) 조석형(趙錫馨)의 딸 증정부인 조씨(趙氏)이다.
1633년(인조 11) 식년시 진사 3등 36위로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관직은 목릉참봉(穆陵參奉)‧광흥창봉사(廣興倉奉事)‧장악원직장(掌樂院直長)‧은진현감(恩津縣監)‧호조좌랑(戶曹佐郞)‧용안현감(龍安縣監)‧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공조정랑(工曹正郞)‧한성부서윤(漢城府庶尹) 등을 역임하였으며, 수직(壽職)으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에 올랐고, 자손들이 귀해짐에 따라 이조참판(吏曹參判)에 추증되었다.
타고난 성품이 효성스러웠으며, 부친으로부터 야단을 들으면 물러가라는 명이 있기 전까지 바르게 서 있었다. 부친상과 모친상을 연이어 당하자 6년간 시묘살이를 하였다.
은진현감 시절 고을을 잘 다스려 임금으로부터 표리(表裏)를 하사 받았다.
슬하에 4남 4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임환(林渙)‧임정(林淀)‧창계(滄溪) 임영(林泳)‧임정(林淨)이다.
묘는 충청남도 보령(保寧) 마강리(馬江里)에 있다.
증조부는 승정원정자(承政院正字) 증병조판서(贈兵曹判書) 임복(林復)이고, 조부는 증승정원좌승지(贈承政院左承旨) 임협(林悏)이다. 부친 통훈대부(通訓大夫) 상주목사(尙州牧使) 증이조참의(贈吏曹參議) 임타(林㙐)와 모친 참봉(參奉) 김우급(金禹伋)의 딸 광주김씨(光州金氏) 사이에서 3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동생 임상유(林相儒)‧임장유(林長儒)가 있다. 두 명의 부인을 두었는데, 첫째 부인은 첨지(僉知) 박호(朴濠)의 딸 증정부인(贈貞夫人) 박씨(朴氏)이고, 둘째 부인은 세마(洗馬) 조석형(趙錫馨)의 딸 증정부인 조씨(趙氏)이다.
1633년(인조 11) 식년시 진사 3등 36위로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관직은 목릉참봉(穆陵參奉)‧광흥창봉사(廣興倉奉事)‧장악원직장(掌樂院直長)‧은진현감(恩津縣監)‧호조좌랑(戶曹佐郞)‧용안현감(龍安縣監)‧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공조정랑(工曹正郞)‧한성부서윤(漢城府庶尹) 등을 역임하였으며, 수직(壽職)으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에 올랐고, 자손들이 귀해짐에 따라 이조참판(吏曹參判)에 추증되었다.
타고난 성품이 효성스러웠으며, 부친으로부터 야단을 들으면 물러가라는 명이 있기 전까지 바르게 서 있었다. 부친상과 모친상을 연이어 당하자 6년간 시묘살이를 하였다.
은진현감 시절 고을을 잘 다스려 임금으로부터 표리(表裏)를 하사 받았다.
슬하에 4남 4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임환(林渙)‧임정(林淀)‧창계(滄溪) 임영(林泳)‧임정(林淨)이다.
묘는 충청남도 보령(保寧) 마강리(馬江里)에 있다.
[참고문헌]
CD-ROM 司馬榜目(韓國精神文化硏究院)
朝鮮王朝實錄
西堂私載
朝鮮王朝實錄
西堂私載
[집필자]
이원배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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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3 | 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