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일(吳挺一)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624C815C77CB1610X0 |
자(字) | 두남(斗南) |
호(號) | 귀사(龜沙) |
생년 | 1610(광해군 2) |
졸년 | 1670(현종 11)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동복(同福)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오단(吳端) |
[관련정보]
[상세내용]
오정일(吳挺一)
1610년(광해군 2)∼1670년(현종 11).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동복(同福). 자는 두남(斗南), 호는 구사(龜沙).
부친은 관찰사 오단(吳端)이다.
1627년(인조 5)에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1636년,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서인들이 이이(李珥)와 성혼(成渾)을 문묘에 배향할 것을 추진하자, 성균관유생으로서 반대하는 상소를 주도하였다가 성균관에서 축출당하였다.
1639년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643년부터 1646년 사이에 정언‧헌납‧이조좌랑‧사간‧이조정랑 등을 거듭 역임하였다.
1645년 도당록(都堂錄)에 올랐으며, 1646년 문과중시에 병과로 급제한 뒤 집의‧부응교‧응교 등을 거쳐 1648년 승지에 이르렀다. 이어 황해도와 경기도의 관찰사 등을 지냈다.
1652년(효종 3) 자기집에 매부인 인평대군(麟坪大君)을 초대하여 잔치를 벌였을 때의 일을 빌미로 일어난 옥사에 연루되었으나 무고임이 밝혀졌다.
1655년 사은부사로 청나라에 다녀왔으며, 이듬해 도승지를 거쳐 1657년 이조참판‧대사헌, 1659년 경기도관찰사를 지냈다.
1660년(현종 1) 도승지로서 『효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1663년 형조판서‧판윤을 거쳐, 1670년 호조판서에 올랐다.
부친은 관찰사 오단(吳端)이다.
1627년(인조 5)에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1636년,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서인들이 이이(李珥)와 성혼(成渾)을 문묘에 배향할 것을 추진하자, 성균관유생으로서 반대하는 상소를 주도하였다가 성균관에서 축출당하였다.
1639년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643년부터 1646년 사이에 정언‧헌납‧이조좌랑‧사간‧이조정랑 등을 거듭 역임하였다.
1645년 도당록(都堂錄)에 올랐으며, 1646년 문과중시에 병과로 급제한 뒤 집의‧부응교‧응교 등을 거쳐 1648년 승지에 이르렀다. 이어 황해도와 경기도의 관찰사 등을 지냈다.
1652년(효종 3) 자기집에 매부인 인평대군(麟坪大君)을 초대하여 잔치를 벌였을 때의 일을 빌미로 일어난 옥사에 연루되었으나 무고임이 밝혀졌다.
1655년 사은부사로 청나라에 다녀왔으며, 이듬해 도승지를 거쳐 1657년 이조참판‧대사헌, 1659년 경기도관찰사를 지냈다.
1660년(현종 1) 도승지로서 『효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1663년 형조판서‧판윤을 거쳐, 1670년 호조판서에 올랐다.
[참고문헌]
孝宗實錄
顯宗實錄
國朝人物考
燃藜室記述
國朝榜目
顯宗實錄
國朝人物考
燃藜室記述
國朝榜目
[집필자]
김상오(金相五)
성명 : "오정일(吳挺一)"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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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