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李禂)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C774B3C4FFFFB1609X0 |
자(字) | 자주(子周) |
호(號) | 하석(霞石) |
생년 | 1609(광해군 1) |
졸년 | 1639(인조 17)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연안(延安) |
활동분야 | 문신 |
부 | 이광정(李光庭) |
[관련정보]
[상세내용]
이도(李禂)
1609년(광해군 1)~1639년(인조 17). 조선 중기 문신. 자는 자주(子周)이고, 호는 하석(霞石)이다. 본관은 연안(延安)이고, 출신지는 한양(漢陽)이다.
증조부는 이경종(李慶宗)이고, 조부는 이주(李澍)이다. 부친은 이광정(李光庭)이고, 모친은 허잠(許潛)의 딸인 양천허씨(陽川許氏)이다. 두 명의 부인을 두었는데, 이정혁(李廷赫)의 딸과 조민(趙珉)의 딸이다.
1624년(인조 2) 증광시에 생원 2등으로 합격하였다. 1633년(인조 11) 증광시에 급제하였다. 또 1636년(인조 14년) 중시 을과 2위로 급제하였다.
1636년(인조 14) 정언을 거쳐 수찬을 역임하였다. 이때 오달제(吳達濟)와 함께 인조에게 차자(箚子)를 올려 청나라에 사신(使臣)을 보내지 말 것을 청하였다. 1637년(인조 15)에 다시 상소를 올려 윤득열(尹得說)‧이후양(李後陽)‧기만헌(奇晩獻)이 대간에 적합하지 않다고 배척하였다. 1639년(인조 17)에 헌납에 이어 교리로 자리하다가 같은 해 생을 마쳤다.
자녀는 아들 이수징(李壽徵)과 이구징(李耉徵)이 있다.
증조부는 이경종(李慶宗)이고, 조부는 이주(李澍)이다. 부친은 이광정(李光庭)이고, 모친은 허잠(許潛)의 딸인 양천허씨(陽川許氏)이다. 두 명의 부인을 두었는데, 이정혁(李廷赫)의 딸과 조민(趙珉)의 딸이다.
1624년(인조 2) 증광시에 생원 2등으로 합격하였다. 1633년(인조 11) 증광시에 급제하였다. 또 1636년(인조 14년) 중시 을과 2위로 급제하였다.
1636년(인조 14) 정언을 거쳐 수찬을 역임하였다. 이때 오달제(吳達濟)와 함께 인조에게 차자(箚子)를 올려 청나라에 사신(使臣)을 보내지 말 것을 청하였다. 1637년(인조 15)에 다시 상소를 올려 윤득열(尹得說)‧이후양(李後陽)‧기만헌(奇晩獻)이 대간에 적합하지 않다고 배척하였다. 1639년(인조 17)에 헌납에 이어 교리로 자리하다가 같은 해 생을 마쳤다.
자녀는 아들 이수징(李壽徵)과 이구징(李耉徵)이 있다.
[참고문헌]
조선왕조실록
기년편고
기년편고
[집필자]
장준호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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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