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심(柳淰)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C720C2ECFFFFB1608X0 |
자(字) | 징보(澄甫) |
호(號) | 도계(道溪) |
생년 | 1608(선조 41) |
졸년 | 1667(현종 8)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전주(全州)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유정량(柳廷亮) |
모 | 정휘옹주(貞徽翁主) |
[관련정보]
[상세내용]
유심(柳淰)
1608년(선조 41)∼1667년(현종 8).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징보(澄甫), 호는 도계(道溪).
부친은 전창위(全昌尉) 유정량(柳廷亮)이며, 모친은 선조의 딸 정휘옹주(貞徽翁主)이다.
1613년(광해군 5) 계축옥사로 가산이 적몰되고 유배당한 아버지를 따라 호남에 있다가 1623년 인조반정으로 풀려나왔다.
1627년(인조 5) 사마시에 합격한 뒤 음보(蔭補)로 참봉이 되고 시직(侍直)으로 1635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승문원에 등용되고 1638년 사은진주 겸 성절동지사(謝恩陳奏兼聖節冬至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그뒤 1651년(효종 2) 경상도관찰사로 나아갔으며, 1656년에도 평안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1659년(현종 즉위) 예조참판으로 고부 겸 주청사(告訃兼奏請使)의 부사로 다시 청나라에 다녀온 뒤 강화유수가 되었으며, 1662년에는 도승지를 역임하였다.
글씨에 뛰어났으며, 특히 송설체(松雪體)에 능하였다.
부친은 전창위(全昌尉) 유정량(柳廷亮)이며, 모친은 선조의 딸 정휘옹주(貞徽翁主)이다.
1613년(광해군 5) 계축옥사로 가산이 적몰되고 유배당한 아버지를 따라 호남에 있다가 1623년 인조반정으로 풀려나왔다.
1627년(인조 5) 사마시에 합격한 뒤 음보(蔭補)로 참봉이 되고 시직(侍直)으로 1635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승문원에 등용되고 1638년 사은진주 겸 성절동지사(謝恩陳奏兼聖節冬至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그뒤 1651년(효종 2) 경상도관찰사로 나아갔으며, 1656년에도 평안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1659년(현종 즉위) 예조참판으로 고부 겸 주청사(告訃兼奏請使)의 부사로 다시 청나라에 다녀온 뒤 강화유수가 되었으며, 1662년에는 도승지를 역임하였다.
글씨에 뛰어났으며, 특히 송설체(松雪體)에 능하였다.
[참고문헌]
仁祖實錄
孝宗實錄
顯宗實錄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淸選考
孝宗實錄
顯宗實錄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淸選考
[집필자]
오성(吳星)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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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