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경(鄭麟卿)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815C778ACBDB1607X0 |
자(字) | 성서(聖瑞) |
호(號) | 창곡(蒼谷) |
생년 | 1607(선조 40)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온양(溫陽)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상세내용]
정인경(鄭麟卿)
1607년(선조 40)∼미상. 조선 중기 문신. 자는 성서(聖瑞)이고, 호는 창곡(蒼谷)이다. 본관은 온양(溫陽)이다.
증조부는 정현(鄭礥)이고, 조부는 정지승(鄭之升)이다. 부친 정회(鄭晦)와 모친 헌납 정이주(鄭以周)의 딸 광주정씨(光州鄭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1639년(인조 17) 알성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 관직에 나아갔다. 효종이 즉위한 후 사헌부지평‧정언‧장령을 지냈으나, 정언 재임 당시의 잘못이 밝혀져 사간원의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 1654년(효종 5)에 다시 등용되어 필선‧장령‧강원도추쇄어사(江原道推刷御史)를 지낸 뒤, 1656년(효종 7) 사은사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이후 낭청‧종성부사(鍾城府使)‧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증조부는 정현(鄭礥)이고, 조부는 정지승(鄭之升)이다. 부친 정회(鄭晦)와 모친 헌납 정이주(鄭以周)의 딸 광주정씨(光州鄭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1639년(인조 17) 알성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 관직에 나아갔다. 효종이 즉위한 후 사헌부지평‧정언‧장령을 지냈으나, 정언 재임 당시의 잘못이 밝혀져 사간원의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 1654년(효종 5)에 다시 등용되어 필선‧장령‧강원도추쇄어사(江原道推刷御史)를 지낸 뒤, 1656년(효종 7) 사은사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이후 낭청‧종성부사(鍾城府使)‧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仁祖實錄
孝宗實錄
國朝榜目
孝宗實錄
國朝榜目
[집필자]
김혜영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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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3 | 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