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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행우(李行遇)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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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사회(士會)
호(號)수남(水南)
생년1606(선조 39)
졸년1651(효종 2)
시대조선중기
본관전의(全義)
활동분야문신 > 문신
이후기(李厚基)
조부이기준(李耆俊)
증조부이제신(李濟臣)
외조부남호(南琥)

[상세내용]

이행우(李行遇)
1606년(선조 39)∼1651년(효종 2).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사회(士會), 호는 수남(水南). 지평 이제신(李濟臣)의 증손으로, 조부는 이기준(李耆俊)이고, 부친은 장악원정(掌樂院正) 이후기(李厚基)이며, 모친은 남호(南琥)의 딸이다.

1633년(인조 11)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 예문관검열, 대교를 거쳐, 1635년(인조 13) 정언에 제수(除授)되어 부제학 홍방(洪霶)을 논박하다 체차(遞差: 관직이 교체됨.)되었으며, 이어 정언에 복직한 뒤 헌납지평을 거쳐, 1636년(인조 14) 이조좌랑에 제수(除授)되었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독전어사(督戰御史) 종사관으로 활약한 공으로 준직(准職)에 제수(除授)되었고, 1638년(인조 16) 수찬에 올랐다가 이어 함경도암행어사로 파견된, 이듬해 이조정랑에 제수(除授)되었으나, 암행어사로 파견될 당시 집에 들러 아버지를 보았다는 이유로 파직되었다.

그 뒤 집의사간부응교응교 등 삼사(三司)의 직을 두루 수행하였고, 1641년(인조 19)에는 강도(江都)에 보관하던 『일기(日記) 』 중 병자호란 때 사기(史記)를 보충하는 겸춘추(兼春秋)로 임무를 수행하였고, 장재(將才)가 있는 문신으로 비변사의 천거를 받았다.

1643년(인조 21) 사간부응교 등을 거쳐 동부승지우부승지에 올라 사치 풍조를 금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고, 그 이듬해 좌부승지이조참의, 대사간부제학지평 등을 역임하였다. 효종이 즉위한 뒤에도 승지에 임용된 뒤 이조참의대사간부제학 등을 두루 거쳤다.

[참고문헌]

仁祖實錄
孝宗實錄
國朝榜目

[집필자]


수정일수정내역
2009-09-302009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