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심총(沈棇)

[요약정보]

UCIG002+AKS-KHF_12C2ECCD1DFFFFB1605X0
자(字)자첨(子瞻)
생년1605(선조 38)
졸년?(미상)
시대조선중기
본관청송(靑松)
활동분야문신
심광세(沈光世)

[상세내용]

심총(沈棇)
1605년(선조 38)~미상. 조선 중기 문신. 자는 자첨(子瞻)이다. 본관은 청송(靑松)이고, 거주지는 경(京; 서울)이다.

증조부는 심인겸(沈仁謙)이고, 조부는 심엄(沈㤿)이며, 부친은 통훈대부(通訓大夫) 지제교(知製敎) 심광세(沈光世)이다. 외조부는 황신(黃愼)이고, 두 명의 부인을 두었는데, 처부는 이언경(李彦慶)‧이정양(李貞陽)이다. 형으로 심은(沈檼)‧심억(沈檍)‧심헌(沈櫶)이 있다. 1635년(인조 13) 증광시 진사 3등에 39위로 합격하였으며, 1651년(효종 2) 별시 병과에 1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관직은 정언(正言)‧장령(掌令)‧광주부윤(廣州府尹) 등을 역임하였다.

1654년(효종 5) 장령 재임 시절 충청도와 전라도에 대동법(大同法)을 시행하고, 부역을 하지 않는 사대부 자제들에게 해마다 1필씩의 베를 거두어 공물(貢物)을 더 늘려야 한다는 상소를 올렸다. 그러자 영의정 정태화(鄭太和) 등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백성들에게 공물을 더 거둬들이는 법을 새로 재정해서 실행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이러한 상소를 올린 그를 체차(遞差)해줄 것을 청하였으나 윤허되지는 않았다. 1655년(효종 6) 광주부윤 시절에 1,800석의 관미(官米) 남용한 일로 조사를 받았을 때 청나라 사신의 대접에 썼다는 변명을 하였다가 국문(鞠問)을 당하였다. 1657년(효종 8) 감옥에서 사형을 기다리고 있던 중에 사형 대신 유배지에 처해졌다. 1661년(현종 2) 현종이 등극한 후 원자(元子)의 탄생을 축하는 특별사면으로 석방되었다. 그러나 선조(先祖)에서 유배시킨 사람은 유배지에서 죽도록 하는 것이 관례인데 석방시킴은 부당하다는 상소문이 올라와 다시 유배되었다.

[참고문헌]

CD-ROM 司馬榜目
國朝文科榜目
孝宗實錄
顯宗實錄

[집필자]

이은영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