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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초객(成楚客)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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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봉혜(鳳兮)
호(號)이력(履歷)
생년1605(선조 38)
졸년?(미상)
시대조선중기
본관창녕(昌寧)
활동분야문인
성하창(成夏昌)

[상세내용]

성초객(成楚客)
1605년(선조 38)~미상. 조선 중기 문인. 자는 봉혜(鳳兮)이고, 호는 이력(履歷)이다.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증조부는 성수익(成壽益)이고, 조부는 부제학 성진선(成晉善)이며, 부친은 내시교관(內侍敎官) 성하창(成夏昌)이다. 외조부는 한효중(韓孝仲)이고, 처부는 이유경(李裕慶)이다.

1633년(인조 11) 증광시에 생원 2등 19위로 입격하였고, 같은 해 증광시에서 병과 15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당시 어가를 호위하여 남한산성에 들어갔다. 1637년(인조 15)에는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이 되었으며, 1639년(인조 17)에는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이 되었다. 이후 사간원과 사헌부의 정언과 지평, 헌납(獻納)에 번갈아 제수되며 대간으로 활동하였다.

1645년(인조 23)에는 병조정랑에 제수되었는데, 경솔하고 천박하며 급박하게 승진하려 한다는 사간원의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다.

1649년(인조 27) 비변사에 의해 유장(儒將)으로 뽑혔으며, 효종 즉위 후 인천부사에 제수되어 지방관으로 부임하였다. 1653년(효종 4) 함경시취어사(咸鏡試取御史)에 임명되었으며, 1654년(효종 5) 다시 내근직인 사간원헌납에 제수되었다. 1655년(효종 6)에는 승지에 제수되었다. 1659년(현종 1년) 서원현감으로 근무 중 곡반(哭班)에서 술주정했다는 이유로 사판(仕版) 삭제가 건의되었다.

1660년(현종 1)에는 길주목사에 임용되었는데, 연안 임소(任所)에서 죽었다.

아들로 성인동(成麟童)이 있다.

[참고문헌]

國朝人物考

[집필자]

나영훈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