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성귀(蔡聖龜)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C44C131ADC0B1605X0 |
자(字) | 용구(用九) |
호(號) | 지비재(知非齋) |
생년 | 1605(선조 38) |
졸년 | 1647(인조 25)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평강(平康)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채진형(蔡震亨) |
[상세내용]
채성귀(蔡聖龜)
1605년(선조 38)∼1647년(인조 25).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평강(平康). 자는 용구(用九), 호는 지비재(知非齋). 진사 채진형(蔡震亨)의 아들이다.
1630년(인조 8)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성균관학유‧학록‧학정‧박사, 감찰, 형조좌랑, 정언‧지평, 함경도사‧예조정랑‧영월군수 등을 거쳤다. 그는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때 두 차례에 걸쳐서 화친을 배척하는 상소를 하였다.
특히, 정묘호란 때에는 남한산성에 달려가 인조를 위문하고 율시 한 수를 지었는데, 이와같은 그의 존주절의(尊周節義)가 높이 평가되어 1755년(영조 31)에는 통정대부를 증직받았다. 시호는 충헌(忠憲)이다.
1630년(인조 8)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성균관학유‧학록‧학정‧박사, 감찰, 형조좌랑, 정언‧지평, 함경도사‧예조정랑‧영월군수 등을 거쳤다. 그는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때 두 차례에 걸쳐서 화친을 배척하는 상소를 하였다.
특히, 정묘호란 때에는 남한산성에 달려가 인조를 위문하고 율시 한 수를 지었는데, 이와같은 그의 존주절의(尊周節義)가 높이 평가되어 1755년(영조 31)에는 통정대부를 증직받았다. 시호는 충헌(忠憲)이다.
[참고문헌]
仁祖實錄
英祖實錄
國朝榜目
燃藜室記述
國朝人物考
英祖實錄
國朝榜目
燃藜室記述
國朝人物考
[집필자]
임선빈(任先彬)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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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2010-04-20 | 고종실록 13권, 1876년 11월 27일조를 참고하여 시호 충헌(忠憲) 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