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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李烓)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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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희원(熙遠)
호(號)명고(鳴皐)
생년1603(선조 36)
졸년1642(인조 20)
시대조선중기
본관전주(全州)
활동분야문신 > 문신
이진영(李晉英)
고령신씨(高靈申氏)
외조부신식(申湜)

[상세내용]

이계(李烓)
1603년(선조 36)∼1642년(인조 20).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희원(熙遠), 호는 명고(鳴皐). 효령대군(孝寧大君) 이보(李補)의 후손으로, 부친은 정랑 이진영(李晉英)이며, 모친은 고령신씨(高靈申氏)지중추부사 신식(申湜)의 딸이다.

1621년(광해군 13) 유학으로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1624년(인조 2) 사정에 출사하였으며, 그뒤 여러 관직을 거쳐 1637년 지평정언장령, 1638년 수찬집의, 1639년 필선사간 등을 지냈다. 그는 간관으로 있으면서 청나라와의 관계에서 주화파로서 척화파 김상헌(金尙憲) 등을 공격하는 데에 앞장섰다.

1641년말 선천부사로 있을 때에 명나라 상선과 밀무역하다가 청나라에 발각되어 의주에 구금, 청나라 장군 용골대(龍骨大)의 심문으로 처형을 받게 되자 구명책으로 최명길(崔鳴吉)이경여(李敬輿)신익성(申翊聖)이명한(李明漢) 등이 명나라와 밀통한다는 사실과 또 우리나라의 음사(陰事) 12조를 고하였다.

청나라 장군은 이 사람이 국가와 왕을 배신하는 자로 판단하고 우리나라에서 처단하도록 연락하여 조정에서는 의금부도사 정석문(鄭錫文)을 보내어 1642년에 그를 참수하였다. 문장과 시에 능하였다.

[참고문헌]

仁祖實錄
孝宗實錄
肅宗實錄
昭代紀年
國朝榜目
國朝人物志

[집필자]

박정자(朴定子)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