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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희세(沈熙世)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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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덕휘(德輝)
생년1601(선조 34)
졸년1645(인조 23)
시대조선중기
본관청송(靑松)
활동분야문신
심열(沈悅)
생부심엄(沈㤿)

[상세내용]

심희세(沈熙世)
1601년(선조 34)~1645년(인조 23). 조선 중기 문신. 자는 덕휘(德輝)이다. 본관은 청송(靑松)이다.

증조부는 청릉부원군(靑陵府院君) 영돈녕부사(領敦寧府事) 심강(沈鋼)이고, 조부는 부사 심예겸(沈禮謙)이며, 부친은 영의정 심열(沈悅)이다. 생부는 선조대 동서붕당으로 유명한 심의겸(沈義謙)의 아들인 심엄(沈㤿)이다.

1639년(인조 17) 식년시 문과에 병과 5위로 급제하였다. 같은 해에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이 되었으며, 1642년(인조 20)에는 지제교에 선출되었다. 1643년(인조 21)에는 사간원 헌납으로 승직하였으며, 한 달 뒤에는 홍문관수찬(弘文館修撰)에 제수되었다. 다시 세 달 뒤에는 이조좌랑(吏曹佐郞)으로 임명되었다. 1644년(인조 22) 홍문관부교리(弘文館副校理)에 제수되었는데, 곧 이조좌랑으로 재임용되었다.

이때 신면(申冕)의 뜻에 부합하여 성초객(成楚客)을 임용한 것을 두고 대간의 탄핵을 받았으며, 결국 유형을 받았다. 1645년 부친인 우의정 심열 아들의 중병을 이유로 용서를 구하는 상소를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심희세(沈熙世)는 유배를 떠나기 전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추후 이조판서‧도승지로 추증되었다.

묘 와 신도비는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에 위치한다.

[참고문헌]


[집필자]

나영훈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