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해(李時楷)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74C2DCD574B1600X0 |
자(字) | 자범(子範) |
호(號) | 송애(松崖) |
생년 | 1600(선조 33) |
졸년 | 1657(효종 8)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전주(全州)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이춘영(李春英) |
[관련정보]
[상세내용]
이시해(李時楷)
1600년(선조 33)∼1657년(효종 8).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자범(子範), 호는 남곡(南谷)‧송애(松崖). 이춘영(李春英)의 아들이다.
1630년(인조 8) 생원이 되고, 그해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정언이 되었다.
1634년 관작을 빼앗기고 북변에 귀양갔다가 이듬해 석방되어 지평에 이어 교리를 지냈다.
1636년 문학이 되어 청나라 심양에 볼모로 가는 소현세자를 호종하고, 1638년 보덕에 오르고 응교‧집의‧동부승지‧우승지를 거쳐 1647년 전라도관찰사를 지냈으며, 1650년(효종 1) 좌승지로서 춘추관수찬관이 되어 『인조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1652년 대사간에 임명되었으나 원두표(元斗杓)와 친밀하다는 혐의를 받고 파면되었다가 다시 등용되어 1653년 도승지에 이어 판결사를 지냈다.
이듬해 대사헌‧대사간‧동지경연사(同知經筵事) 등을 거쳐 1657년 이조참판이 되고, 사은부사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630년(인조 8) 생원이 되고, 그해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정언이 되었다.
1634년 관작을 빼앗기고 북변에 귀양갔다가 이듬해 석방되어 지평에 이어 교리를 지냈다.
1636년 문학이 되어 청나라 심양에 볼모로 가는 소현세자를 호종하고, 1638년 보덕에 오르고 응교‧집의‧동부승지‧우승지를 거쳐 1647년 전라도관찰사를 지냈으며, 1650년(효종 1) 좌승지로서 춘추관수찬관이 되어 『인조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1652년 대사간에 임명되었으나 원두표(元斗杓)와 친밀하다는 혐의를 받고 파면되었다가 다시 등용되어 1653년 도승지에 이어 판결사를 지냈다.
이듬해 대사헌‧대사간‧동지경연사(同知經筵事) 등을 거쳐 1657년 이조참판이 되고, 사은부사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참고문헌]
仁祖實錄
孝宗實錄
國朝榜目
燃藜室記述
孝宗實錄
國朝榜目
燃藜室記述
[집필자]
김용덕(金龍德)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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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