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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심(李{礻+尋})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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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자첨(子瞻)
호(號)가은(稼隱)
생년1598(선조 31)
졸년1657(효종 8)
시대조선중기
본관연안(延安)
활동분야관료
이창정(李昌庭)

[상세내용]

이심(李{礻+尋})
1598년(선조 31)∼1657년(효종 8).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자첨(子瞻), 호는 가은(稼隱).

감사 이창정(李昌庭)의 아들이다.

명문가의 아들로 천성이 조용하며 독서를 좋아하고 가시 사립과 띠자리에 미숫가루와 나물을 먹으면서도 이해와 영달을 마음에 두지 않았다. 광해 조에 세상이 크게 어지러움을 보고 몸을 깨끗이 하고 스스로를 지켜 과거보기를 그만두고 가족을 이끌고 안동 송치로 이사하여 농사를 지어 자급하였으며, 군내 자제들이 날마다 모여서 수업을 받으니 거하는 곳이 학교가 되었다. 형제 여섯 명이 모두 함께 살았으며 아우들이 모두 높은 지위에 있었는데 매번 귀가할 때마다 반드시 동구 밖에서부터 말에서 내렸다. 한 집에 모여살면서 형을 공경하기를 엄부와 같이 대하였다. 부모의 상을 당하여 3년을 시묘하였고 집에 있을 때에는 읍(泣)을 하니 보는 사람들이 효자의 높은 행실이라 하였다. 제사에 기명과 제수를 일정한 식을 정해서 행하니 모두가 본받을 만하였다.

조공 형과 심공 대부가 정사로서 허하여 수시로 왕래하며 서로 관곡하였다. 스스로 은거하여 이름을 세상에 들어내지 않음을 즐기며 현달한 사람과 더불어 서로 교제함을 즐기지 않고 진고한 곳에 왕래하니 이른바 청사(淸士)였다. 아들 이관징(李觀徵)이 염근함으로써 나라에 알려져 판중추에 이르러 이조판서를 겸하였고 손자 이옥부제학으로 문학에 이름이 있었다.

[참고문헌]

嶺南人物考

[집필자]

이원배
수정일수정내역
2008-12-312008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