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진(河溍)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D558C9C4FFFFB1597X0 |
자(字) | 진백(晉伯) |
호(號) | 태계(台溪) |
생년 | 1597(선조 30) |
졸년 | 1658(효종 9)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진양(晉陽)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하공효(河公孝) |
외조부 | 윤기(尹起) |
저서 | 『태계문집』 |
[관련정보]
[상세내용]
하진(河溍)
1597년(선조 30)∼1658년(효종 9).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진백(晉伯), 호는 태계(台溪).
대사간 하결(河潔)의 7세손으로, 하공효(河公孝)의 아들이며, 모친은 군자감봉사(軍資監奉事) 윤기(尹起)의 딸이다. 이각(李殼)의 문인이다. 어렸을 때 덕천서원(德川書院)에서 학문의 기초를 닦았다.
1624년(인조 2) 생원‧진사의 양시에 합격하고, 1633년 증광문과에 갑과로 급제, 사재감직장(司宰監直長)에 임명되었으나 부모봉양을 이유로 취임하지 않고,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장에 추대되어 상주에 이르렀다가 아버지의 상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상을 마친 뒤 병조낭관‧헌납‧지평을 역임하다가 신병과 어머니의 봉양을 이유로 사임하였다.
1649년(효종 즉위) 다시 지평으로 부름을 받고 나아가 사은한 다음 김자점(金自點)의 전횡을 탄핵하고 즉시 사임, 귀향하였다.
그뒤 여러 번 장령‧사간‧집의로 부름을 받았으나 모두 병을 이유로 취임하지 않았다. 효성이 지극하였고 관후한 성품으로 직언을 잘하였다. 진주의 종천서원(宗川書院)에 배향되었고, 저서로 『태계문집』 4책이 있다.
대사간 하결(河潔)의 7세손으로, 하공효(河公孝)의 아들이며, 모친은 군자감봉사(軍資監奉事) 윤기(尹起)의 딸이다. 이각(李殼)의 문인이다. 어렸을 때 덕천서원(德川書院)에서 학문의 기초를 닦았다.
1624년(인조 2) 생원‧진사의 양시에 합격하고, 1633년 증광문과에 갑과로 급제, 사재감직장(司宰監直長)에 임명되었으나 부모봉양을 이유로 취임하지 않고,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장에 추대되어 상주에 이르렀다가 아버지의 상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상을 마친 뒤 병조낭관‧헌납‧지평을 역임하다가 신병과 어머니의 봉양을 이유로 사임하였다.
1649년(효종 즉위) 다시 지평으로 부름을 받고 나아가 사은한 다음 김자점(金自點)의 전횡을 탄핵하고 즉시 사임, 귀향하였다.
그뒤 여러 번 장령‧사간‧집의로 부름을 받았으나 모두 병을 이유로 취임하지 않았다. 효성이 지극하였고 관후한 성품으로 직언을 잘하였다. 진주의 종천서원(宗川書院)에 배향되었고, 저서로 『태계문집』 4책이 있다.
[참고문헌]
仁祖實錄
孝宗實錄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台溪文集
孝宗實錄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台溪文集
[집필자]
최승희(崔承熙)
성명 : "하진(河溍)"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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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