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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담(林墰)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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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재숙(載叔)
호(號)청구(淸癯)
시호(諡號)충익(忠翼)
생년1596(선조 29)
졸년1652(효종 3)
시대조선중기
본관나주(羅州)
활동분야문신 > 문신
임서(林㥠)
조부풍암(楓巖)
조부임복(林復)
증조부임붕(林鵬)
외조부임식(林植)

[상세내용]

임담(林墰)
1596년(선조 29)∼1652년(효종 3).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재숙(載叔), 호는 청요(淸曜)청구(淸癯).

증조부는 승지(承旨) 임붕(林鵬)이고, 조부는 풍암(楓巖) 임복(林復)이다. 부친은 관찰사 임서(林㥠)이며, 모친은 구성부사 임식(林植)의 딸이다.

1616년(광해군 8) 생원이 되고, 1635년(인조 13)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이듬해 병자호란 때 사헌부지평으로 남한산성에 들어가 총융사종사관이 되어 남격대(南格臺)를 수비하였고, 화의가 성립된 뒤 진휼어사(賑恤御史)호남 지방에 내려갔다.

1639년 좌승지사은부사(謝恩副使)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왔고, 1644년 경상도관찰사로 서원이 사당화하는 폐습을 상소하였다.

1646년 충청도관찰사유탁(柳濯)의 모반사건을 처결, 그 공으로 품계가 오르고 토지를 하사받았다.

그뒤 형조예조병조이조참판대사간도승지를 거쳐 이조판서가 되고, 1650년(효종 1) 다시 사은부사청나라에 다녀와서 지경연사(知經筵事)를 겸하였다.

1652년 청나라 사신의 반송사(伴送使)로 다녀오다가 가산에서 죽었다. 천품이 영오(穎悟)하고 풍의(風儀)가 활달하였으며, 희노(喜怒)를 표정에 나타내지 않고 호오(好惡)에 치우침이 없었다.

식견이 홍심(弘深)하고 전략에도 밝았다.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충익(忠翼)이다.

[참고문헌]

仁祖實錄
孝宗實錄
藥泉集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燃藜室記述

[집필자]

임영정(林英正)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