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경유(都慶兪)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B3C4ACBDC720B1596X0 |
자(字) | 내보(來甫) |
호(號) | 낙음(洛陰) |
생년 | 1596(선조 29) |
졸년 | 1636(인조 14)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성주(星州)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저서 | 『낙음집(洛陰集)』 |
[상세내용]
도경유(都慶兪)
1596년(선조 29)∼1636년(인조 14).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내보(來甫), 호는 낙음(洛陰). 정구(鄭逑)‧서사원(徐思遠)의 문인이다.
1624년(인조 2) 사마시에 합격하고 정묘호란 때 호남으로 세자를 호종하였으며 난이 끝난 뒤 금부도사‧평양서윤 등을 역임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경상도관찰사 심연(沈演)의 종사관(從事官)이 되어 쌍령전투(雙嶺戰鬪)에서 쌓아놓은 화약의 폭발사고로 패전하였다. 그 죄로 유배가던 도중에 죽었다.
뒤에 이 화약폭발사고가, 전에 비장(裨將) 박충겸(朴忠謙)의 잘못을 꾸짖고 참수(斬首)한 일이 있었는데, 그의 아들이 화풀이로 한 소행임이 밝혀져 승지로 추증되었다. 대구의 병암서원(屛巖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는 『낙음집(洛陰集)』 6권 2책이 있다.
1624년(인조 2) 사마시에 합격하고 정묘호란 때 호남으로 세자를 호종하였으며 난이 끝난 뒤 금부도사‧평양서윤 등을 역임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경상도관찰사 심연(沈演)의 종사관(從事官)이 되어 쌍령전투(雙嶺戰鬪)에서 쌓아놓은 화약의 폭발사고로 패전하였다. 그 죄로 유배가던 도중에 죽었다.
뒤에 이 화약폭발사고가, 전에 비장(裨將) 박충겸(朴忠謙)의 잘못을 꾸짖고 참수(斬首)한 일이 있었는데, 그의 아들이 화풀이로 한 소행임이 밝혀져 승지로 추증되었다. 대구의 병암서원(屛巖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는 『낙음집(洛陰集)』 6권 2책이 있다.
[참고문헌]
仁祖實錄
嶺南人物考
嶺南人物考
[집필자]
유영박(柳永博)
명 : "경유(慶兪)"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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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