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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수(李敏樹)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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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중무(仲茂)
생년1594(선조 27)
졸년?(미상)
시대조선중기
본관전주(全州)
활동분야문신
이충(李冲)
생부이명(李溟)

[상세내용]

이민수(李敏樹)
1594년(선조 27)~미상. 조선 중기 문신. 자는 중무(仲茂)이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효령대군(孝寧大君)의 후손으로, 증조부는 명종의 왕비 인순왕후(仁順王后)의 외숙인 이량(李樑)이고, 조부는 이정빈(李廷賓)이며, 부친은 『선조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고 우의정(右議政)에 추증된 이충(李冲)이다. 생부는 광해군 때 이이첨(李爾瞻)에 반대하고 영창대군(永昌大君)에게 죄주는 것을 반대하였다가 파직되었고, 인조반정(仁祖反正) 후 이괄(李适)의 난 때 인조의 공주몽진을 도운 이명(李溟)이다,

1618년(광해군 10) 증광시 문과에 병과 17위로 급제하였다.

1626년(인조 4) 형조정랑(刑曹正郞)으로 재직 중 생부인 이명이 사헌부(司憲府)‧사간원(司諫院)의 논핵을 받자 억울함을 고하는 상소를 올렸으나 그 상소의 내용이 대간(臺諫)의 존엄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파직되었다. 1641년(인조 19) 의주부윤(義州府尹) 재직 중 한선(漢船) 두 척이 장자도(獐子島)로 이동했다는 치계(馳啓)를 올렸다. 그러나 청의 앞잡이로 매국 활동을 했던 정명수(鄭命壽)과 연관되어 파직되었다. 또한, 1647년(인조 25) 형조참의(刑曹參議)로 있을 때, 외국 사신들의 접대 음식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았고 이와 관련되어 직무태만으로 대질 심문을 받았다. 효종 대에 양주목사(楊州牧使)로 재직하였다.

[참고문헌]

仁祖實錄
孝宗實錄

[집필자]

손용석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