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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휼(金霱)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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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운서(雲瑞)
호(號)매사(梅沙)
생년1594(선조 27)
졸년?(미상)
시대조선중기
본관상산(商山)
활동분야문신
김덕근(金德謹)

[상세내용]

김휼(金霱)
1594년(선조 27)~미상. 조선 중기 문신. 자는 운서(雲瑞)이고, 호는 매사(梅沙)이다. 본관은 상산(商山)이다.

증조부는 김장수(金長琇)이고, 조부는 김택(金澤)이며, 부친은 김덕근(金德謹)이다.

1612년(광해군 4) 증광시 진사 3등 2위로 입격하였고, 1623년(인조 1) 알성시에 을과 1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1626년(인조 4) 세자시강원설서(世子侍講院說書)로 임명되었고, 이후에는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과 장령(掌令)에 임명되었다. 1635년(인조 13년) 동당(東堂)의 시관(試官) 으로 재직 중에 과거법을 어겼다는 조경(趙絅)의 상소로 인하여 파직되었다. 이듬해 사헌부장령으로 복직하였고, 1637년(인조 15) 승정원우부승지(承政院右副承旨)에 임명된 뒤로부터는 승정원의 주요 관직을 두루 거치게 되었다.

1648년(인조 26) 동지사(冬至使)에 선발되어 부사(副使) 직책을 맡게 되었으나, 사행중 병으로 사망하였다.

[참고문헌]

仁祖實錄

[집필자]

손용석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