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필(金弘弼)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E40D64DD544B1596X0 |
자(字) | 탕경(湯卿) |
생년 | 1592(선조 25) |
졸년 | 1650(효종 1)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순천(順天) |
활동분야 | 학생 > 유생 |
[상세내용]
김홍필(金弘弼)
1592년(선조 25)∼1650년(효종 1). 조선 중기 유생. 자는 탕경(湯卿)이다. 본관은 순천(順天)이다.
증조부는 김자한(金自漢)이고, 조부는 김언국(金彦國)이며, 부친은 김유(金裕)이다. 외조부는 이주(李鑄)이다. 부인은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남각(南珏)의 딸 의령남씨(宜寧南氏)이다.
타고난 성품이 낙천적이었으나 일을 처리하는 데는 정밀하고 섬세하였으며, 평생 명예와 이익 및 사치에 대해선 담백하게 여겼다. 막내아우를 가르쳐 끝내 성취하게 하였으며, 맏형과 막내아우 부부가 모두 일직 죽자 어린 조카를 자기가 낳은 자식처럼 거두었다.
묘는 경기도 광주(廣州)에 있다.
증조부는 김자한(金自漢)이고, 조부는 김언국(金彦國)이며, 부친은 김유(金裕)이다. 외조부는 이주(李鑄)이다. 부인은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남각(南珏)의 딸 의령남씨(宜寧南氏)이다.
타고난 성품이 낙천적이었으나 일을 처리하는 데는 정밀하고 섬세하였으며, 평생 명예와 이익 및 사치에 대해선 담백하게 여겼다. 막내아우를 가르쳐 끝내 성취하게 하였으며, 맏형과 막내아우 부부가 모두 일직 죽자 어린 조카를 자기가 낳은 자식처럼 거두었다.
묘는 경기도 광주(廣州)에 있다.
[참고문헌]
屛溪集
[집필자]
박경이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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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3 | 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