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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색(許穡)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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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유추(有秋)
생년1586(선조 19)
졸년?(미상)
시대조선중기
본관양천(陽川)
활동분야문신
허용(許嵱)

[상세내용]

허색(許穡)
1586년(선조 19)~미상. 조선 중기 문신. 자는 유보(有甫)‧유추(有秋)이다. 본관은 양천(陽川)이고, 거주지는 한양(漢陽: 현 서울)이다.

증조부는 허강(許鋼)이고, 조부는 허적(許績)이며, 부친은 조산대부(朝散大夫) 행형조좌랑(行刑曹佐郞) 허용(許嵱)이다. 외조부는 한경린(韓景麟)이고, 처부는 강윤조(姜胤祖)이다.

1612년(광해군 4) 식년시에 진사 3등 10위로 합격하였고, 1627년(인조 5) 강화정시 문과에 응시하였다. 이때 인조가 직접 시단(試壇)에 당도하여 ‘무간우우양계송(舞干羽于兩階頌)’이라는 제목으로 시험을 치렀는데, 이 시험에서 장원 급제하였다. 관직은 분승정원승지(分承政院承旨)‧부안현감(扶安縣監)‧통례원상례(通禮院相禮) 등을 역임하였다.

그런데 외가인 강화도에서 태어나고 자라 시험에 응시한 것을 예조(禮曹)에서 문제 삼으면서 삭직되었다. 그러나 강화 유생 한담(韓曋)이 그가 혼자 치죄되는 것이 억울하다고 상소하여 논죄에서 풀려났다. 부안현감을 역임하면서 정사를 잘 다스리지 못하여 1634년(인조 12)에 종사관(從事官) 이경의(李景義)가 치계(馳啓)를 올리고, 도체찰사(都體察使) 김류(金瑬)가 파직을 청하면서 해당 관직에서 파직되었다. 1645년(인조 23) 세자가 출입할 때에 인도를 맡은 공을 인정받아 통정대부(通政大夫)에 가자되었다. 슬하에 아들 허열(許悅)을 두었다.

[참고문헌]


[집필자]

이후남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